▶비 오는 날 새벽 산책 길에
새벽에 평상시처럼 산책하러 집을 나선다. 현관문을 여니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어제 일기예보가 맞기는 맞나보다. 그와 동시에 오늘 오후부터 진행되는 가을야구 경기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염려부터 든다. 새벽에 잠깐 왔다 그치기를 바랄 뿐이다.
우산을 받쳐 들고 동네 공원으로 향했다. 우산에 살금살금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정겹게 들린다. 공원에 도착하니 평소 같으면 산책로를 걷고 있을 새벽지기들이 오늘은 한산하다. 싸늘한 가로등 밑에 낙엽만이 우수수 떨어진다. 비가 오니 밖에 나오기를 주저하는 것 같다. 나도 현관문을 열었을 때 떨어지는 비를 보며 순간적으로 오늘은 생략할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었다. 허나 주저하던 마음보다 몸이 먼저 반응을 해버렸었다. 내 발은 신발을 신고 있었다. 요즈음은 하루라도 새벽 운동을 거르면 괜히 찌뿌둥해진다.
혼자서 산책로를 따라 10여분 동안 걸었다. 밤사이 부는 바람이 그나마 간당간당 붙어 있던 낙엽들을 여지없이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어제 보다 더 많은 낙엽들이 쌓였다. 쌓인 낙엽들이 오래간만에 오는 비에 축축이 젖어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밟으면 바싹거리던 낙엽들이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하고 납작 엎드려 있다. 그 모습을 보니, 누군가의 수필에 물기에 젖어 아스팔트 바닥에 붙어 있는 낙엽을 보며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습기에 젖어 아스팔트에 붙어 있는 낙엽들은 비로 쓸어도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 모습을 보며 ‘퇴출되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라고 표현한 것을 본 기억이 난다. 정말로 공감이 갔던 표현이라고 생각했었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죽음이라는 다음 행선지에 서둘러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의 적절한 표현이라는 것에도 공감이 간다. 살아 온 삶에 애착이 많은 사람들은 더더욱 미련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이 애처롭게 보인다.
조금 있으니 그래도 두 세분의 새벽지기들이 우산을 들고 왔다. 그 사람들도 역시 몸이 먼저 움직였을 것이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새벽길을 걸었다. 발밑에 바삭거렸던 소리보다 우산 위에 떨어지며 소곤거리는 빗소리가 더 정답게 들린다. 고요한 새벽에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묘한 감정을 일으킨다. 뚜두둑 떨어지는 소리도 살랑살랑 떨어지는 소리도 각각의 소리마다 전해오는 감흥은 다르게 느껴진다.
뚜두둑 떨어지는 소리에는 힘이 느껴지는 강렬함이 있고, 살랑살랑 떨어지는 빗소리는 다정한 친구와 속삭이는 정겨움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한 감상 속에 오롯이 새벽 산책로를 우산을 쓰고 40여분 정도 걸었다.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한가로운 새벽을 맞이할 수 있어 감사할 뿐이다.
잠시 비가 멈추었을 때는 주변에 있는 운동기구에 몸을 풀어도 보았다. 하루가 다르게 몸 상태가 내 맘같이 않음을 느낀다. 세월이 야속할 뿐이다.
이 비가 내리고 나면 추위가 온다고 한다. 항상 계절이 바뀌기 전에는 전초 작업으로 비가 먼저 왔었다. 올해도 이렇게 어수선한 가운데 코로나와 함께 저물어 가고 있는 거 같다. 올 겨울은 코로나로 인하여 몸과 마음이 더 움추려드는 계절이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