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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잠

▶새벽잠

 

새벽잠, 아침잠, 늦잠, 낮잠, 저녁잠, 선잠, 깊은 잠, 꿀잠, 쪽잠, 새우잠 등 잠을 표현하는 말들이 참 많습니다. 잠을 자는 시점과 방법 및 깨어나는 시점에 따라 다 붙여진 이름들입니다. 또 어떤 잠이 있을까요?

 

오늘도 새벽 3시경에 깨어 선잠이 들었다가 4시 반이 되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년 전부터 새벽잠이 없어지더니 요사이 들어서는 기상 시간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면 새벽잠이 없어진다고 하더니 맞는 말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새벽 형 인간이지만 아내는 새벽에 잠을 자기 시작하는 올빼미 형이다.

 

자주 묘사되는 보통 사람들의 아침 풍경을 보면, 아내들이 먼저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고 나서 남편을 깨우느라고 곤욕을 치르는데 나에게는 가당치도 않는 말이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아내가 나를 출근하라고 재촉하면서 깨운 적이 없다. 거의 내가 먼저 일어나 아내를 흔들어 깨우면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라고 재촉하곤 했다. 전날 저녁때 회식을 하고 늦게 들어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나도 한번 아내가 흔들어서 깰 때 일어나기 힘들어하면서 ‘5분‘5 만’, ‘10분 만하고 애걸하는 것을 해보고 싶다. 언제나 일어나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다.

 

일요일이나 휴일에도 마찬가지다. 어김없이 평상시와 비슷한 시간에 눈이 떠진다. 일요일이라고 점심때까지 잠을 자는 사람을 보면 이해가 안 간다. 나는 더 자려고 해도 잠이 오지 않는다. 오래까지 누워 있으면 허리도 아프고, 억지로라도 자보고 싶은 잠은 오지 않고 눈만 말똥말똥한 상태로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다가 일어나고 만다. 우리 집에서 나만 그렇다. 내가 먼저 일어나 설치기 시작하면 일요일인데 잠 좀 자게요!’라고 하면서 짜증을 부리기 일쑤다. 아무리 일요일이라고 하지만 아침밥은 먹어야 하지 않나? 어떤 때는 기다리지 못하고 간단하게 라면으로 대충 때우기도 했다.

그래서 일요일이나 휴일에는 나 혼자 일어나 차를 몰고 테니스 코트로 향한다. 보통 회사 동료들하고 약속을 하고 휴일 날 점심때까지 테니스 코트에서 지낸다. 마지막은 점심내기 게임을 하고 해장국을 먹고 나서 헤어진다. 그러고 집에 오면 식구들은 부스스한 얼굴을 하고 그때서야 일어난다. 이해가 안 된다. 식구들은 아점을 하고, 나는 사워를 하고 나서 낮잠을 한숨 때린다.

 

이런 습관은 어릴 때부터 길들여진 것 같다. 고등학교 때까지 12년 개근을 한 것 보면 말이다. 우리 형제들 중에서도 유독 나만, 늦게 일어나서 지각한다든가 이런 일은 내 사전에 없었다. 어릴 때부터 일찍 일어나는 습관도 들었지만 나이가 들어 새벽잠이 없어지니 기상 시간이 더 빨라진 것이다. 그렇게 난 아침 형 인간에서 새벽 형 인간이 되었다.

그러고 또한 아침에 하는 일은 낮 시간에 하는 것보다 3배 이상의 효율이 있다고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다. 일찍 일어나면 책을 읽기도 하고 어떤 때는 생각나는 글을 쓰기도 한다. 그러고 나서 어김없이 새벽 5시가 좀 지나면 운동을 나선다. 인천으로 이사 온 2년 전부터는 두 시간 정도 걷기도 했지만, 전주에 있을 때는 한 시간 정도 자전거를 탔었다. 인적이 드문 새벽길을 자전거 타고 가는 상쾌한 기분을 늦잠 자는 사람들은 알 수가 없다. 계절 따라 변하는 주위 풍경은 환상의 하이킹 코스다. 봄의 꽃길, 여름의 청록색, 가을의 노란 은행나무와 황금빛 들판 길을 질주하는 맛은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정상적인 사람은 하루에 7~8시간 정도는 자야 한다고 한다. 인생의 1/3이라는 긴 시간이다. 100세 인생이라고 하면 자그마치 33년 이상 잠을 자는 것이다. 그만큼 잠을 자는 것이 건강에 필수적인 사항이란 얘기다. 그런데 잠을 자지 못하는 불면증 때문에 고생을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시중에는 불면증을 해소하기 위한 여러 비법들이 회자되기도 하지만 긴 밤을 하얗게 새웠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님 보기 위해 하얗게 새는 일은 있겠지만 지금까지 나하고는 관계없는 일인 것 같다.

 

난 지금까지 불면증 때문에 고생한 기억은 없다. 저녁에 커피를 마시고 난 후 잠들기 어려웠던 기억은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보통 5분 정도 지나면 잠에 빠진다. 그래서 지금도 커피는 좋아하는 기호 식품이 아니다. 아내는 그런 거에 개의치 않는다고 하는 데 나는 안 그렇지가 않다. 잠을 못 자고 뒤척일 때 생각해보면 오후나 저녁때 커피를 마신 경우가 많다. 개인별로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습관들이기 나름이다.

 

예전에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는 ‘4당 5 락’이니 ‘3당 4 락’이라는 말들이 많이 돌았다. 남들이 공부하는 시간에 나 혼자서 잠만 자고 있으면 입시에 떨어질 수 있다는 말이었다. 잠은 그만큼 우리들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인자였다. 잠을 자지 못하면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살아있지 못한다. 그런데 기네스북을 보면 몇 날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지냈다는 사람들을 본다. 기이한 일이라 기네스북에 올랐겠지만 상상이 가지를 않는다.

작금의 시대는 야간에도 불야성을 이루고 있어 잠을 자지 못하도록 유혹하는 일들이 참 많다. 심야 영업을 하는 업소도 24시간 영업하는 업소들도 있다. 야간 통행금지를 시행하던 시절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풍경들이다. 불야성 같은 밤을 만끽하는 올빼미족들은 신나는 세상이다. 게임에 중독된 사람들은 잠도 자지 않고 컴퓨터 앞에서 충혈된 두 눈을 부릅뜨고 있다. 인간들이 점점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귀중한 자기 삶을 갉아먹고 있는 중이다.

 

인간의 생체리듬은 하루 중에도 싸인 커브를 그리면서 움직이고 있다. 그 리듬에 맞추어 생활을 해야만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의 생체리듬은 밤 12시 이전에 잠자리에 들어야 정상적인 리듬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리듬에 맞추는 생활을 하기 위해 가급적이면 밤 10시경이면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곤 새벽 4시 반 경이면 일어났었다. 8시간은 아니지만 그만큼 새벽잠이 없어졌다. 나는 새벽 형이고 아내는 올빼미 형이다.

 

며칠 전부터는 잠자는 시간이 9시 이전으로 빨라졌다. 그러다 보니 기상 시간도 덩달아 빨라진 것이다. 내가 일어날 시간 가까이 되면 아내는 그제야 잠자리에 든다. 나하고 생활리듬이 엇갈린다. 그리곤 아침 8시 경이되어서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난다. 내가 스스로 아침을 챙겨 먹지 않으면 아침을 건너뛰고 기다려야 한다. 별 수 없이 나의 식습관을 바꾸었다. 하루 2식만 하기로. 요사이는 아침 9시 반에서 10시 사이에 첫 식사를 한다. 그리고 저녁 6시경에 마지막 식사하고 TV 스포츠 중계 보고 있다가 졸기 일쑤다. 그러면 8시가 되어도 잔다.

 

변한 환경을 탓하면서 왜 그러냐고 따지면서 원상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것보다 내가 바꾸는 것이 수월하다. 다이어트도 되고 식비도 절약되고 짜증도 안 나고, 일석 삼조다. 모든 것은 내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바꾸기 어려운 것을 바꾸라고 하기보다는 내가 바뀌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다. 넓은 침대에서 혼자 자니 편하고 코 고는 소리 난다고 구박받지도 않고 코 고는 소리 듣지도 않아서 좋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일석 오조다.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신비스러움이다.

오늘도 새로운 경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