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1박 2일(1)
“여보, 우리 동해안 갔다 올까?”
내가 답답하고 괜히 우울해지려고 할 때 동해안 파도를 보면 힘이 솟는 것 같거든요.
“웬 동해안?”
아내는 뜬금없는 나의 제안에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습니다.
“응, 우리 이별여행 한번 갔다 오게. 다음 주 목요일 정도 가도록 하자고”
“무슨 이별여행?”
아내는 더욱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계속 물어봅니다.
“다음 달 2일에 차 반납하기로 했거든. 마지막으로 한번 갔다 오자고.”
그렇게 해서 어느 날 갑자기 동해안 쪽으로 차를 몰고 나들이하기로 우리는 결정을 했습니다.
그동안 장기 렌트해서 차를 사용했는데 코로나로 인해 거의 차를 사용할 기회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 손주들 보러 갔다 오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 외에는 그냥 세워만 두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니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매달 할부금만 내는 것이 아깝게 느껴졌습니다. 아직 계약기간이 10개월 정도 남아 있지만 위약금을 내고서라도 반납하는 것이 이득인 거 같았습니다. 어쩌다 차가 꼭 필요할 때에는 잠깐 렌트해서 이용하는 것이 경제적일 것 같았습니다.
원래 나들이를 자주 하는 편은 아니지만, 여행이나 나들이할 때는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고 나서 출발하는 스타일입니다. 준비도 하지 않고 현지에 가서 우왕좌왕하는 것은 제 체질에 맞지 않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냥 갑자기 동해안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깐 동해안 파도를 보고 맛있는 거 먹고 당일로 돌아오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1박 2일을 생각하고 있었나 봅니다. 이것저것 준비하는 것이 많습니다. 간식거리도 많이 챙깁니다. 누룽지, 과자류, 과일 등을 부지런히 챙기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출발 예정 시간보다 40분이나 지체되고 말았습니다. 나도 내친 김에 1박 2일로 가기로 하고 출발했습니다. 가면서 김밥 집에 들러서 김밥도 두 줄 샀습니다. 차에 기름도 가득 채웠습니다. 썬 글라스도 멋지게 썼습니다.
차를 몰고 장거리 이동을 할 때면 아내는 항상 온갖 먹거리들을 준비합니다. 명절 때 시골에 내려갈 때는 우리 네 식구의 간식거리를 포함하여 두 끼 식사를 준비합니다. 김밥 및 과일, 옥수수, 오징어 과자류 등이 주 메뉴입니다. 우리는 준비한 음식을 즐기며 아무리 길이 막힐지라도 지루함을 참으며 고향길을 가곤 했습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각종 간식거리가 준비되어 운전하는 동안 옆에서 부지런히 입에 넣어 줍니다. 이 맛도 괜찮습니다.
떠나기 며칠 전에 부부가 함께 배낭여행을 즐기는 친구가 강원도에 있다는 사진이 단톡 방에 올라왔습니다. 50년 지기 고등학교 친구들 모임방입니다. 코로나 사태만 아니라면 아마 지금쯤 지구 어느 구석에 있었을 친구입니다. 국내에 있을 때는 그 친구 부부는 봉고차를 몰고 전국 명소를 수시로 다닙니다. 그러다가 풍경 좋은 곳에 주차하고 텐트 치고 생활하는 것을 즐기는 부부입니다. 해외 나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대신하는 것 같습니다. 현대판 ‘유목민 부부’입니다.
그래서 그 친구의 봉고차 트렁크에는 야영 생활에 필요한 온갖 살림살이들이 거의 준비되어 있습니다. 전국을 돌아다니기 위해서 승용차 대신 온갖 장비들을 실을 수 있는 봉고로 바꿨다지요, 아마. 두 사람이 눈만 마주쳤다 하면 언제든지 차를 몰고 떠나기만 하면 되는 상태입니다. 부부는 같은 방향을 향하여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같은 취미를 가진다는 것은 더욱 부러운 일이지요. 같은 방법은 아닐지라도 말이지요. 그런데 이 부부처럼 같은 방법으로 삶을 즐기는 것이 어떤 때는 부럽기도 하지만, 나이 들어서는 굳이 그러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편안한 것이 좋거든요. 다들 그렇지요?
이왕이면 가는 길에 잠깐이라도 만나서 회포를 풀고 싶었습니다. 출발 전에 통화를 하며 조율했지만 서로의 시간과 경로가 맞지를 않아 강원도에서 만나는 것은 포기했습니다. 우리가 가는 날 친구는 돌아오는 여정이었습니다. 그 대신 우리가 돌아가는 날 길목에 있는 친구의 집 근처에서 식사를 하면서 회포를 풀기로만 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오랫동안 오도기 모임을 가질 수 없게 되다 보니 서로 보고 싶은 마음들이 간절했나 봅니다.
예정된 시간보다 늦었지만 아무런 부담 없이 차를 몰고 우선 원주로 출발했습니다. 원주의 매밀전병이 맛있다는 소리를 듣고 그걸 먹고 가자는 아내의 제안에 따라 원주 시장을 목적지로 기분 좋게 출발했습니다. 평일 고속도로는 붐비지 않고 잘 빠지고 있었습니다. 점심때쯤 해서 원주 중앙시장에 도착했습니다. 낮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북적거렸습니다. 내일이 정월 대보름이라서 그랬나 봅니다.
소문난 맛집을 찾아 다니다가 우선 원주의 별미 올챙이국수를 점심식사로 대신했습니다. 달랑 김치 하나에 수저도 필요 없이 젓가락 한 벌과 국수 한 그릇이 전부였습니다. 그것도 채 1분이 걸리지도 않고 즉시 나왔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신속하고 간편하게 나오는 식사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방송에 소개되었다고 벽에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별미라서 맛있게 먹기는 했었지만 뭔가 허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좀 허전하다 싶은 느낌으로 점심을 먹고, 매밀전병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가게에 들러 30분 이상을 기다렸습니다. 줄지어 기다리는 사람들이 서너 명 있었습니다. 우리는 차 안에서 금방 만든 따뜻하고 맛있는 메밀전병을 먹으면서 다음 목적지로 출발했습니다. 아내는 전병을 기다리는 동안 주위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근처에 있는 소금산 출렁다리가 볼만하다는 정보를 듣고는 그리 가자고 합니다. 굳이 싫다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 운전하고 가면서 먹는 메밀전병은 꿀맛이었습니다.
제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는 모임이 있습니다. ‘맛 따라 멋 따라’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하는 것입니다. 한 대에 차에 탈 수 있는 인원들과 함께 전국의 경치 좋은 곳을 찾아가면서 그 지역의 맛있는 음식을 즐기면서 독서토론을 하는 모임입니다. 제 말을 듣고 부럽다는 말을 하면서도 정작 모임 결성에 적극적인 사람은 없었습니다. 쉬는 날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평일에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움직여야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나 말고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더라고요. 어찌, 같이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멋있지 않겠습니까? 멋있는 사람과 자연과 먹거리와 거기에 책을 통한 지적인 향유의 즐거움까지! 금상첨화일 것 같습니다.
좌우지간, 평일이라 좀 한산한 관광지는 호객행위를 하는 가게 주인들의 소리만 크게 들렸습니다. 소금산에 계단을 걸어 올라가서 출렁다리를 건넜습니다. 그런데 원래 출렁다리라는 것은 중간쯤에 가면 출렁출렁 흔들거리고, 바닥도 좀 투명해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까마득히 보여야, 겁이 많은 사람은 오금이 저리는 짜릿한 맛도 느낄 수 있어야 재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행여 사고라도 나면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것이 두려워서 그랬는지 튼튼해도 너무 튼튼했습니다. 거의 미동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힘들게 올라간 보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도 어린 유튜버 소녀는 셀카봉을 들고 주위를 돌려가며 설명을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런데 입장료를 받고 그중 2/3는 지역 상품권으로 다시 돌려줍니다. 상품권을 강매하는 형식이지만 지역의 상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차원으로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고전하고 있는 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썩 괜찮은 아이디어 같습니다. 아내는 그 상품권과 별도의 금액을 내고 뭔가를 샀습니다. 어디를 가든 그냥 오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그 지역의 특산품이라고 하면 일단 사고 봅니다.
오후 4시가 지나서 우리는 강릉 동해안 바다로 출발했습니다. 강릉 경포대에 도착하니 저녁시간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숙소를 정하고자 여기저기 마땅한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는 모습을 보고 아내는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왔느냐고 하면서 옆에서 연신 툴툴거립니다. 이번 여행 컨셉은 계획 없이 무작정 가는 컨셉이라고 설명해도 막무가내입니다. 경포 호수가 보이는 괜찮은 곳에 숙소를 정했습니다. 평일이라 숙박료도 적당했습니다. 저녁 식사는 원주에서 산 매밀전병으로 대신했습니다. 바닷가에 왔으니 회라도 즐기러 가자고 하니, 인천도 바닷가인데 별도로 갈 필요가 있느냐는 아내의 말에 그냥 때우기로 한 것입니다.
(내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