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1박 2일(2)
다음 날도 평상시처럼 새벽에 눈이 떠졌습니다. 곤히 자고 있는 아내를 남겨두고 혼자서 경포 호숫가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제법 나와 있었습니다. 나처럼 걷는 사람도 있고 조깅하는 사람, 단체연수 온 그룹들도 있었습니다. 중간에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경포대 해수욕장 모래사장에 가서 보고 싶던 파도도 보았습니다. 마침 해가 뜨는 시간과 맞물려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해변가에 나와 있었습니다. 떠오르는 태양의 모습을 연신 카메라에 담고 있습니다. 나도 하나 찍으려는데 휴대폰의 배터리가 간당간당 거립니다.
한 시간 정도 걷고 숙소에 도착하니 아내는 아직도 꿈나라입니다. 같이 걸으면 좋으련만 본인이 내키지 않는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냥 혼자서 어제 먹다 남은 전병을 아침 대용으로 먹어치웠습니다. 연속 두 끼를 전병으로 때우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원래 아침 식사는 잘 먹지 않는 아내는 가지고 간 누룽지와 과일로 간단하게 해결하였습니다. 정말로 실비로 여행을 하고 있는 우리입니다.
목적지도 없이 숙소를 나왔지만 우선 해변에 가서 파도 구경을 하고 가자고 했습니다. 아내는 무계획으로 움직이는 내 모습에 아직도 불만이 가득한 표정입니다. 그러든지 말든지,, 파도를 보고 싶은 나는 모래사장에 서서 우렁차게 왔다가 하얗게 부서지는 검푸른 파도를 하염없이 보았지요. 허허. 정말로 동해안 파도는 서해나 남해안 파도에 비하여 힘이 느껴집니다. 그 맛에 여기 옵니다. 그걸 보고 있으면 힘이 솟습니다. 아자!
못마땅해하는 아내를 서둘러 태우고 그냥 정동진으로 향했습니다. 북쪽 속초 방향으로 가는 것보다 정동진 쪽이 좀 익숙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강원도 7번 국도는 서너 번 와봤던 길입니다. 정동진역을 지나 이정표를 보니 ‘‘정동 심곡 바다 부채 길’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냥 그곳을 구경하기로 하고 차를 유턴하여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넓은 주차장엔 우리 포함하여 두 대의 승용차만 달랑 있었습니다. 평일이고 코로나 시국이니 그러려니 하고 짐작했습니다.
안내 표지를 따라 걸어가려니 뒤에서 ‘어르신들!’하고 부르는 여자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의아한 생각과 함께 쳐다보니 40대 정도로 보이는 여인이 우리를 보고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한의원 간호사로부터 ‘아버님’이라는 말은 들었는데 ‘어르신’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보는 말입니다. 우리 모습이 그 정도로 나이가 들어 보였나 봅니다. 그러면서 ‘부채 길 가시려면 호텔 주차장으로 가시는 것이 빨라요.’라고 친절하게 알려 주는 것이었습니다. 고맙다는 말과 함께 차를 몰고 산 위에 있는 배 모양의 썬쿠르즈 호텔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이 호텔은 10년 전에 제 생일 기념으로 아내와 같이 동해안 여행을 하며 1박을 했던 호텔입니다.
‘정동 심곡. 2.86km를 왕복하는 상당히 긴 거리입니다. 그런데 도중에 화장실이 없으니 먼저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가야 한다고 안내판에 쓰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65세 이상은 ‘경로 우대’라 무료라고 합니다. 오, 예! 얼마 안 되는 금액이지만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대우받는 느낌입니다. 이럴 때는 참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안내판에는 ‘정동이라는 말은 임금이 계신 한양에서 정방향으로 동쪽에 있다는 뜻에서 유래했으며, 심곡은 깊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바다 부채 길의 명칭은 정동진의 부채 끝 지형과 탐방로가 위치한 지형의 모양이 바다를 향해 부채를 펼쳐 놓은 모양과 같아서 선정되었다’라고 쓰여 있었고, ‘천연기념물 제437호로 지정되었고, 동해 탄생의 비밀을 간직한 2,300만 년 전 지각변동을 관찰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해안 단구 관광지’라고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10년 전에 왔을 때는 보지 못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때는 아마 군사보호구역이라서 개방이 안 되었던 것 같습니다. 탐방로를 걸어가면서 보니 드문드문 방치된 경비 초소들이 남아 있습니다. 해안가에 있는 탐방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수십 개의 계단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야 했습니다. 보행에 문제가 있는 어르신들은 오고 가기가 쉽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우리도 내려가면서 다시 또 계단을 올라갈 걱정을 했을 정도입니다. 다행히 사람들이 적어 북적거리지 않아서 쾌적하게 아름다운 경관들을 자세히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바다에 솟은 기암들에 밀려와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는 내가 그리던 장엄한 모습이었습니다. 힘차고 아름다웠습니다. 가까이서 동해안 파도를 제대로 보았습니다. 탐방길 도중에 있는 벤치에 앉아 쉬면서 검푸른 동해안 파도를 실컷 느껴보았습니다. 절벽에 보이는 단층의 모습도 신기한 모습들입니다. 여러 가지 형상을 한 바위들의 모습을 배경으로 사진도 몇 장 찍었습니다. 제주도 올레길의 해안가의 모습과 견줄만할 정도로 아름다운 해안가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태풍 때 일부 탐방로가 파손되어 끝까지는 가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돌아갈 일이 더 까마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다시 돌아가는 여정은 힘들었습니다. 거리만 왕복 5km가 넘는 길입니다. 더욱이 막판에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는 일은 까마득하게 보였습니다. 힘들어하는 아내를 뒤에서 밀면서 기를 쓰고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훨씬 지났습니다. 오는 길에 눈여겨보아 둔 춘천 막국수 집에 들러 메밀 비빔국수를 먹기로 했습니다. 배고픈 뒤에 먹는 음식은 뭐라도 꿀맛 일진 대 강원도 명물인 메밀국수를 먹으니 어찌 입맛이 당기지 않겠습니까. 식사를 마치니 오후 두 시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 되어 친구와 안양에서 만날 시간을 조율했습니다. 친구 일이 끝나는 6시 이후에 만나기로 하고 도착할 때쯤 통화하기로 했습니다. 시간을 보니 조금 여유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7번 국도를 따라 동해시를 둘러보기로 하였습니다. 동해 시장에 들러 뭔가를 사고자 했는데 별로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특별히 만든 찐빵을 친구 줄 겸 우리도 가면서 먹을 겸해서 샀습니다. 그리고 여유 있게 강원도를 출발해서 귀갓길에 올랐습니다.
아직은 한산한 고속도로를 달렸습니다. 옆에서는 많이 걸어서 피곤했는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잠깐 깨어나면 남아 있는 간식거리를 먹습니다. 나에게도 먹여주는 먹거리 덕분에 졸지 않고 운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달리는데 서울 근교 부근에 다다르니 지체되기 시작합니다. 조짐이 이상합니다. 아뿔싸, 하필 퇴근 시간과 맞물리고 만 것입니다. 미처 그것까지는 계산하지 못한 불찰입니다. 약속시간에 근 한 시간 늦게 찾아 간 장소는 그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체인점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다른 지역에 있는 음식점이었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입니다.
늦게까지 기다린 친구 부부에게 미안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친구 마나님이 손수 비벼 준 보리 비빔밥을 시작으로 해서 맛있는 해물 조개 전골 요리를 즐겼습니다. 오래간만에 소주잔도 기울였습니다. 모두들 건강한 모습들이 보기 좋습니다. 인천까지 운전은 술을 먹지 않는 아내가 대신하기로 하고 친구 부부와 회포를 풀었습니다. 기분 좋은 만남입니다. 다음에는 인천에서 만나 맛있는 것을 즐기기로 하고 아쉽게 자리를 마감했습니다.
다음 만나는 날은 전주에서 20년 가까이 떨어져 살다가 인천으로 합쳐서 살게 된 날짜를 택일해서 자리를 마련하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 부부가 떨어져 살다가 합친 지 올해가 2주년이 되어갑니다. 5월 21일 부부의 날을 중심으로 좋은 만남의 자리를 기대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떠난 1박 2일의 여행과 만남은 참 즐거운 여행이었고 아쉬웠지만 기분 좋은 만남이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몇 번이나 이런 즐거움을 가질 수 있을지 예측할 수는 없지만, 기회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임을 실감하기도 합니다. 만날 수 있을 때 많이 만나야 합니다.
까르페 디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