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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던 첫 경험

내 별명

내 별명

똥 싼 배기’

그다지 듣고 싶지 않았던 초등학교2학년 때의 별명이었다. 그것은 생각만 해도 창피스러운 일이었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무척 듣기 싫었다. 그 날의 부끄러운 모습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수많은 별명 중에서 그 누가 이런 수치스러운 별명으로 불려 지기를 바라겠는가?

 

, 배야! 배가 아프다! 변소에 가야 하는데……

한참 수업 중인데 갑자기 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다. 변소에 가야만 하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선생님, 저 배가 아파서 변소에 가야 할 것 같아요!’

손을 들고 이렇게 말하고 재빠르게 변소로 뛰어가야만 하는 일이었다. 나는 그 말조차 하지 못했다.

아무리 수업시간일지라도 변소에 가야 하는 당연한 사실조차 선생님께 감히 말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남 앞에 나선다는 것을 무척이나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남들은 쉬운 일이겠지만, 특히 어렵게만 느껴지는 선생님에게 말을 한다는 것은 무척 쑥스러운 일이었다. 그 정도로 소심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소심한 성격 탓에 한참 수업 중에 변소에 가야겠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에이, 조금 있으면 쉬는 시간이니깐 참았다가 그때 가야지!’

그냥 쉬는 시간까지 참으려고 했다가 그만 바지에 실수를 하고 말았다. 순간적으로 당황스럽고 창피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배 아픈 것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빨리 그 순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어어, 이게 무슨 냄새지?”

선생님, ㅇㅇㅇ이가 똥 쌌나 봐요! 이상한 냄새가 나요!”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상황을 파악한 선생님께서는 빨리 변소에 가라고 말씀하셨다.

정말로 죽고 싶을 정도로 창피스럽기만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거 변소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어떻게 하지?’

똥 싼 바지로 어떻게 집으로 가지?’

온통 창피스러운 모습이 남들에게 알려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만 났다. 다행히 수업시간이라 변소에는 다른 학생들은 없었다. 바지 안쪽을 보니 설사 똥으로 범벅이었다. 허벅지 안쪽에도 물똥들이 달라붙어 기분도 찜찜하고 이상했다.

 

, 이거 바지를 벗고 씻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오면 창피할 텐데······’

학교에서 씻는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그 당시 시골 학교 변소에는 수도시설도 없었고 휴지도 없었다. 별수 없이 씻지도 못하고 집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걷는 것도 불편하고 어기적거리며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평상시에는 그리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날따라 무척이나 멀게만 느껴졌다.

 

아휴! 어떻게 집으로 가지? 왜 이리도 먼 거야!’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쩌지?’

아마도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푹 숙이고 조금은 이상스러운 발걸음으로 갔을 것이다.

어기적어기적거리며 집으로 가야만 했을 것이다.

어머니가 뭐라고 하실까?’

다 큰 놈이 똥오줌도 못 가리고 다닌다고 혼나지나 않을까?’

나는 어머니의 화난 모습을 생각하니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왜 이렇게 일찍 왔냐? 아직 끝날 시간도 아닌데…… 학교에서 무슨 일 있냐?”

학교 끝나는 시간도 아닌데 일찍 돌아온 나를 보고 어머니께서는 무슨 일인지 의아해하시며 걱정스럽게 물으셨다.

말씀을 드리기도 전에 어기적거리는 내 모습을 보시고 상황을 파악하셨다. 엉거주춤하게 서있는 나를 어머니께서는 뒷마당 우물가로 데리고 가셨다. 그리고 똥 싼 바지를 벗기고 깨끗하게 씻겨 주셨다. 대낮에 밖에서 바지를 벗고 있다는 모습보다 똥을 쌌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 이놈아! 배가 아프면 선생님에게 말씀드리고 빨리 변소에 갔어야지. 이게 무슨 창피냐!”

어머님은 이 말씀 외에는 별다른 꾸중을 하지 않으셨다. 호된 꾸지람을 예상했는데 이만하니 참 다행이었다.

마침 동생들은 집에 없어서 나의 그런 창피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5형제의 장남인 내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은 위신이 서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 날의 부끄러운 일을 알고 있는 동생들은 없음이 확실하다.

 

그 이후로 반 친구들은 내 이름 대신 똥 싼 배기’라는’ 별명으로 대신했다. 간혹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갈 때는 입구에서 쌀가게를 하고 있는 친구네 집 앞을 지나야 한다.

어이! 똥 싼 배기! 어디 가냐?”

똥 싼 배기! 똥 싼 배기!"

듣기 싫은 그 별명을 큰소리로 부르는 친구 놈이 무척이나 얄미웠다. 창피스러워 감추고 싶은 나의 모습을 드러내 놓고 떠들어대는 놈을 어느 누가 좋아할 수 있겠는가. 그 이후론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가지를 않았다. 다행히 2학년 말에 아버지의 전근으로 전주로 전학하게 되어 그 소리를 듣지 않게 되어 한시름 놓였었다.

 

그런데 전학 온 학교에서 얻은 새로운 별명은 꼰동이었다.

! 이꼰동! 이리 와서 축구하자!”

어떤 이유에서 그런 별명으로 불려지게 되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현동이라는 내 이름과 모습이 연관되어 붙여진 별명인 것 같았다. 쪼그만 놈이 똘똘하게 뛰어다니는 모습에서 붙여진 별명이었을까? 좌우지간 아무런 뜻도 없는 새로운 별명도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좀 더 새로운 별명이 붙여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중학교 때 번개라는 별명을 얻었다. 원래 번개란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으로 무척 빠르다는 것이 연상된다. 들으면 들을수록 기분 좋은 별명이었다.

운동 중에서 특히 축구를 좋아했던 나는, 축구 시합을 할 때마다 번개처럼 바람처럼 볼을 가지고 달렸다.

, 번개다! 번개! 번개보다 더 빠른 거 같은데!’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번개라는 별명이 붙어진 것이다. 정말 번개보다 빨리 볼을 가지고 운동장을 날아다녔다.

 볼이 있는 곳엔 언제나 내가 있을 정도로 남들보다 엄청 빨랐다.

 

운동장에서 번개처럼 빠르게 뛰어다니던 모습대로, 평소에도 하고 싶은 일들을 미루지 않고 처리했으면 좋겠다는 욕망이 있다.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미적거리는 나를 보면서 가끔 아쉽게 생각하는 일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나 판단은 번개처럼 신속하게, 행동은 여유 있고 꼼꼼하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청윤(靑倫)’

몇 년 전에 자칭 도인이라는 사람한테서 받은 이다. ‘청년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는 의미다. 한참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불현듯 생각이 난다. 썩 마음에 든다. 언제 들어도 괜찮은 호인 거 같다. 아직은 사람들이 내 얼굴을 보면서 나이보다는 한참을 어리게 보기도 하고, 나 스스로도 젊은이의 열정으로 살아가고 싶은 소망이 담아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불리어지기를 바라고 그런 모습으로 삶을 만들어가고 싶을 뿐이다. 요사이 처음 만나는 사람들 중에 내 이름 대신 호를 불러주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그 말이 아직은 내 귀에 익숙하게 들리지는 않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다.

 

청윤! 파이팅!”

힘차게 나의 호를 외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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