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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질

12년 개근상

12년 개근상

 전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 도합 12년 동안이나 개근상을 받았습니다. 남들이 말하는 모범생입니다.

남들은 1년도 하기 힘들다고 하던데, 12년 동안 결석은 물론이고 지각 한번, 조퇴 한번 못해본 성실한 학생이었습니다. 우등상을 받은 어느 상보다 값진 상이지요.

 

 그것은 오로지 어머님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습니다. 학교는 절대로 결석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대단하셨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그 많은 세월 동안 아프지도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자식이 조금이라도 아프다고 하면 다른 분 같았으면 병원에 데리고 가든지 집에서 쉬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 어머님은 아픈 저를 학교에 데리고 가셨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학교에는 꼭 가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가르침으로, 저도 학교는 빠지면 큰일 나는 것으로 알고 생활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까지 12년 개근했던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병원에 한번 가지 않는 건강한 체질이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어머님의 영향으로 규칙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알고 생활했습니다.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은 반드시 지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보니 항상 선생님들에게 귀여움을 받았고 학급에 관한 일도 방과 후에 종종 저에게 시키시기도 하셨습니다. 제가 학교에 다니는 동안 행동이 불량하거나 다른 좋지 않은 일로 부모님이 학교로 불러 나오신 기억이 없습니다. 숙제를 안 했다고 혼난 기억도 없습니다. 성적도 상위권에 속했습니다. 방학숙제도 어머님의 극성스러운 지원 덕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한 것인지 어머님이 한 것인지 애매모호 하지만, 우수한 작품으로 선정되어 게시판에 전시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빛나는 업적(?)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랑질(?)하고 다녔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대단한 놈이라고 치켜세워줍니다. 저도 어느 때까지는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그 사실이 별로 자랑스럽지가 않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랑스럽겠다는 생각 한편에는 학생 시절에 경험했어야 할 여러 가지를 알지 못하였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땡땡이치면서 수업시간에 극장에도 가보고 담치기도 해보고 그래야 하는데, 저는 지금 그러한 행동을 했을 때의 느낌을 알지 못합니다. 막연하게 떨리고 두려운 상황이겠구나 하는 정도만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TV 개그콘서트의 어느 개그우먼 하는 말 그 느낌 아니까라는 말의 그 느낌을 모릅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척 아쉬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벗어났을 때의 느낌, 하지 말라는 것을 해볼 때의 스릴감, 발각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두려움 등 '그 느낌'을 알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성인이 되었을 때의 일탈의 느낌과는 좀 다를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인생 후반전에는 전반전 때 해보지 못한 것들을 당당하고 뻔뻔하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법을 위반한다거나 윤리적으로 어긋나는 행동을 하겠다는 말은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경험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남의 이목이 두려워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지도 못하고, 아쉬움 가득한 상태로 이 세상을 하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머릿속으로 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가 시간만 가는 허무한 인생은 이제는 그만 작별하고 싶습니다. 자기 속에 잠재되어 있는 재능을 알지도 못하고 펼쳐보지도 못하고 이 지구별을 떠난다는 것은 얼마나 무의미한 삶을 사는 것일까요?

 

 어떻게 태어난 인생인데, 그냥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실패할까 두려워, 잘 못할까 불안해 하고 머뭇거리기만 하는 삶을 살고는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일상에서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모습들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안 되었을 때의 상황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할 수 없는 이유를 장황하게 나열하기 시작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대 생산하여 가기만 합니다. 최악의 상태를 두려워하며 포기하곤 합니다. 자기는 남들하고 다르다고 생각하며 자기 생각을 합리화할 수 있는 이유들을 찾기 시작합니다.

하고 싶은 일에는 방법이 보이고 하기 싫은 일에는 변명이 보인다.’는 필리핀 속담도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은 그냥 하고 하면 그만인데 말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분 중에 부산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젊었을 때 너무 가난하여 군밤 장사에서 출발하여 오늘날과 같은 사업체를 이룩하신 분입니다. 그 분이 최근에 책을 내셨는데 제목이 「선 지랄 후 수습 늘 감사」입니다. 대단한 도전과 끈기로 삶을 살아오신 분입니다. 머뭇거리기엔 시간이 없다는 것이지요.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그냥 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곤 이루어진 결과에 대해서는 늘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최근에 알게 된 말 중에 최고가 되려고 하지 마라. 죽는 놈 바로 앞에만 서라. 그리고 이 순간을 즐겨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전부다 최고가 되겠다고 아우성치면 이 세상은 경쟁만 존재하는 각박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매다가 한 평생 끝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좋은 세상 즐기면서 여유 있게 살아가면 좋지 않을까요?

 

 자기만을 위해 허우적거리지 말고 가끔은 주위를 돌아보면서 베푸는 삶도 있다는 것을 알고 살면 안 될까요? 애벌레들끼리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치고 박는 싸움보다는 자유로운 나비가 되어 애벌레들의 아귀다툼을 구경하며 꽃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는 삶은 어떨까요?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자기만 나비가 되고 자유로운 삶을 살면 뭐하느냐, 나비가 되지 못한 애벌레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고 강변합니다. 거기에 대해 저는 이렇게 반문합니다. 자기가 나비가 되어서 애벌레들에게 희망을 주는 삶을 살면 되지 않을까요?

감사와 봉사하는 삶! 함께 살아가는 삶! 그러면 이 세상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빌 게이츠 같은 서양의 부자들은 많은 금액을 기부하며 나누는 삶을 삽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기부하며 같이 즐기는 삶을 삽니다. 우리나라도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고 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유난히도 많이 나는 지금입니다. 최근에 매스컴에 회자되는 가진 자들의 개념 없는 짓거리들을 보면서 답답한 마음이 일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러나 너 때문에 안 된다고 하지 말고 그냥 나부터해버립시다.

 

 ‘공존 공생이라는 말이 절실히 요구되는 작금의 현실입니다. 나 혼자만이 잘 살아야겠다고 탐욕을 부리면 공멸하고 말 것이라는 말들을 합니다. ‘같이해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보자는 생각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원래 같이 살아가게끔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진리를 의식하지 못하고 나만, 내 가족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지금입니다. 사회적으로는 양극화에 폐단에 대해서도 많은 우려를 표시합니다. 그럴 때일수록 가진 사람들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봉사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함께 가야 합니다. 함께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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