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입원하다(2)
어제에 이어 계속하겠습니다.
그 사건 이후 이제는 더 이상 병원 신세를 지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입원해야만 하는 일이 2010년 5월 말에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날은 재인 전주고 동창회에서 체육대회가 있는 날입니다. 저는 인천을 떠났어도 가족들이 인천에 있으니 동문 자격으로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운동이라면 좀 소질이 있고 즐기는 편이기에 참석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또한 얼굴 한번 보자고 하면서 제 동기들이 필히 참석하라고 성화였습니다. 거절하지 못하고 시간을 내어 인천에 올라갔습니다. 오래간만에 동창들을 만나니 반갑기도 하고 그래서 오전부터 축구, 족구 등 각종 경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나이 50이 훨씬 넘었지만 아직도 실력은 줄지 않았더라고요.
젊은 후배 기수들과 시합에서 이기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우리 기수가 좀 강했습니다.
폐막 때쯤 후배들이 도전해 왔습니다. 내기 축구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몇 게임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펄펄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도전을 받아들였습니다. 후반전에 돌입했을 때 체력이 좀 달리는 것 같았습니다.
역시 세월은 속일 수 없나 봅니다.. 공격 포지션에서 수비 쪽으로 위치를 변경했습니다. 후배들의 공격이 줄기차게 밀려왔습니다. 돌진하는 후배의 볼을 수비하기 위해서 오른발을 내미는 순간 종아리 부분에 심한 통증이 왔습니다.
경련이 일어난 줄 알고 마사지를 했지만 상태는 더 악화되기만 했습니다.
별수 없이 교체하여 동기생 의사들에게 보이니 근육이 파열된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마침 일요일이라 쉬고 계시는 부평의 선배님 병원에 연락이 닿아 그날 저녁에 파열된 부분의 연결 수술을 받고 입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취된 상태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수술하는 과정을 느껴보았습니다.
그런 대수술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수술 후 오른쪽 종아리를 보니 기역자로 꿰맨 자국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이번에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이었습니다. 옛날 생각만 하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이제는 내 체력상태가 예전과 같이 않으니 자중하라는 메시지였다고 생각됩니다..
흐르는 세월을 의식하지 못하고 예전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러나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다음 달일에 딸내미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는데 그때까지 보행을 할 수 없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몰려왔습니다.
최악의 경우 신부입장을 시켜야 할 때 목발을 집고 가야 할 형편이기 때문입니다.
선배 의사는 제 말을 들으시고는 그때까지는 보행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자고 하십니다.
다행히 선배님의 극진한 치료 덕분에 불편은 하지만 결혼식 때 목발을 짚지 않고 신부 입장을 시킬 수 있었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이런 어려운 경우를 당했을 때 동문의 힘이 소중하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여러 분야에 관련이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것은 행운입니다.
두 번의 입원을 통해서 제 건강에 대해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제는 젊었을 때처럼 무리한 운동을
해서는 어렵다는 사실에 순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세월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배웁니다.
우리는 시간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2012년 12월에 세 번째로 입원해야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멀쩡한 콧속이 부어오르더니 자꾸 위로 올라가 얼굴과 눈 밑까지 번지는 것이었습니다. 전에도 가끔 콧속에 염증이 있다가 저절로 나은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수롭게 생각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시내 이비인후과에 갔더니 그냥 두면 눈으로까지 번져서 심각한 사태까지 갈 수 있다고 하면서 일주일 정도 입원해야 한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돌아오는 일요일에 부모님의 결혼 60주년(회혼식) 기념잔치를 예약해 놓았는데 장남인 저는 참석도 할 수 없었지요. 그때 저만 빠지고 모든 형제들과 자녀들이 있는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기만 합니다.
나이가 50이 넘어가니 건강에 대해서 자신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했습니다.
예전에는 대수롭지 않은 일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고장이 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이 들었음의 신호는 제일 먼저 눈 쪽에서 왔었습니다. 절제하면서 꾸준한 운동을 통하여 자신의 건강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겠지요. 내가 병이 들어 내 자식들에게 걸림돌로 작용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건강이 무너지면 만사가 무너지는 것이니까요. ‘지·덕·체’ 중에서 제일 기본은 ‘체’가 먼저 확립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상누각일 뿐입니다.
건강을 확보한 다음에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건강은 건강할 때부터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잠시 망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그 말을 귀전으로 듣고 흘리고 맙니다.
자기들이 항상 건강할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병원침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그때까지 지낸다는 것은 불행한 노년일 것입니다.
그때까지 삶을 즐기면서 건강한 일상을 맞이하는 삶의 기초는 젊었을 때부터 만들어가야 합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납니다’
나는 지금 새로운 경험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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