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맘 같지 않은 아들
‘삶을 예술로 가꾸는 사람들’을 목표로 수련을 안내하고 있는 하비람(하늘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대둔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의식을 깨우쳐주기 위한 수련단체입니다. 전주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하비람을 알게 되었습니다. 봉동에서 주유소를 하는 분이 먼저 하비람을 경험을 하고 나서 나에게도 적극적으로 다녀오기를 권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부부와 자녀들이 이미 경험을 하였고 수련을 다녀온 후에 삶이 달라졌다고 하면서 강력하게 추천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직원 한 분과 맞교대를 하면서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제가 자리를 비우면 주유소를 닫아야 하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또 한 가지는 저 같은 사람은 수련을 하지 않아도 삶을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으로 별다르게 마음에 두고 있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꾸 가보라고 하면서 수련 일정을 확인하고는 저 대신 신청을 해버렸고, 수련하는 동안 저희 주유소로 오셔서 저 대신 주유소를 봐주신다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까지 추천하는데 가지 않겠다고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2008년 10월 말에 4박5일간의 하비람 1차 수련을 갔다 왔습니다. 수련을 마치고 나서는 갔다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와 자식들에게 권유를 하게 되었고 아내는 바로 다음 기수에 경험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2단계와 3단계 수련을 할 때는 저하고 같이 수련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다른 사람의 적극적인 권유로 하비람 수련을 마치고 나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꼈습니다. 그 동안 제가 알고 있었던 사항들만이 다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하고 다른 생각과 느낌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는 많이 있고 또한 그런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과 생각, 느낌을 분리해서 행동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에 대한 의식의 깨우침이 있었습니다. ‘나’라는 존재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이 수련을 경험하면서 삶이 바꿔지는 터닝포인트가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신비스러움이었습니다..
그 경험이 소중했기에 가족들에게 권유하여 아내는 수련을 경험했지만 자식들은 시큰둥하기만 했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닌가 보다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학교를 졸업한 후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아들이 하비람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당일 오후에 점심을 먹고 차에 태워 수련 장소에 데려다주었습니다.. 제가 수련할 때의 경험을 말해주면서 잘 마치고 오기를 빌었습니다. 보통 1개 기수가 40여 명 정도 수련을 하는데 수련 과정을 적응하지 못하고 도중하차 하는 인원이 1~2명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련을 추천해준 사람들은 무사히 수련을 마치기를 노심초사하면서 빕니다.
그렇게 도중하차하는 경우가 있어서 수련원에 있는 스태프진에게 부탁하여 잘 보살펴 주기를 특별히 부탁했습니다. 주위에 연락하여 수련을 격려하는 편지도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저녁에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수련생 명단을 확인해 보니 별칭을 ‘비움’이라고 정하고 수련에 임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비움이라는 별칭이 우선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참 의미가 있는 별칭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비워야 어떤 것이든 채울 수 있기 때문에 수련에 임하는 자세가 되었구나 하고 안심했습니다. 뿌듯했습니다. 수련을 마치고 깨우쳐진 의식으로 삶을 개척해나가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오전 중에 아들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수련을 하는 동안에는 전화를 할 수가 없는 것을 알고 있는 저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하룻밤을 자고 난 아들은 더 이상 수련을 받지 못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막막했습니다. 무슨 말인가를 해주어야겠는데 배신감만 올라왔습니다. 그냥 참고 계속해보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기대가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화도 올라왔습니다. 저보고 데리러 오라고 하는데 가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를 않았습니다. 성질을 내면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인천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아내는 너무 혼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라고 저를 달랬습니다. 아내와 통화하고 나니 마음이 좀 진정이 되었습니다. 진정된 마음으로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데리러 가겠다고 하고 한 시간 가까이 차를 몰고 데리러 갔습니다. 가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착잡한 마음으로 도착해보니 아들은 버스 승강장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데리고 오면서 마음을 진정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이런저런 얘기들을 했습니다. 아들은 수련을 안내하는 선생이 수련생들에게 반말하는 것이 용납이 되지를 않아서 수련하기가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온 소심한 아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과정을 넘어서야 수련을 확실히 받을 수 있는데 하는 아쉬움이 저절로 올라왔습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스태프들을 무슨 낯으로 봐야 할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화나는 마음을 억누르며 내 경험을 얘기해주고 버스 승강장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그렇게 아들은 고속버스를 타고 인천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하여 대하는 사람마다 생각하는 방향이 다릅니다. 그 생각하는 방향과 느낌을 어떻게 가져가는 가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내 생각대로 이미 일어난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미 엎어진 물입니다. 엎어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 엎어진 물을 자기 나름대로 주워 담으려고 합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실을 사실 그 자체로 인정하고 내 생각과 느낌을 바꾸는 것만이 가능합니다.
아들이 도중하차한 것은 사실이고 이미 엎어진 물입니다. 그 사실을 뒤집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내 생각과 느낌을 바꾸면 됩니다. 아내의 말을 듣고 제 생각을 바꾸고 나니 아들과 차분하게 상황을 얘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문제가 문제로 보이지 않고 그냥 그 사실로 볼 수 있습니다. 아들이 수련 중에 도중하차 한 사실 그 자체만 보였습니다.
수련 마지막 날에는 수련을 마친 수련생과 그리고 추천한 사람들이 모여서 수련을 축하하는 경축의 장이 열립니다.
이미 도중하차하여 축하해 줄 사람도 없지만, 저는 시간에 맞추어 경축식장에 참석했습니다. 가지 않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그냥 갔습니다.
사실과 제 생각을 분리하니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경축식장에 참석한 모습을 보고 사실을 아는 스태프들이 의아하게 쳐다보다가 저를 위로하여 줍니다. 도중하차한 사실을 모르는 저의 동기 수련생들은 서로 축하해줍니다. 안내하는 선생님이 얼싸안기를 하며 저를 위로해 줍니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으니 다음에 기회를 잡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정말로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신비스러움입니다.
언젠가는 수련에 참석하여 그간의 상황과 그때의 마음 상태에 대하여 추억을 더듬어 볼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의식으로 같이 얘기하며 즐길 수 있는 삶으로 만들어 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삶은 내 생각대로만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런 지혜를 바탕으로 삶을 예술로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나하고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이 같은 의식구조를 갖지 않으면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나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입니다.
오늘도 수련 때 습득한 삶의 기술을 자동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의식적으로 연습합니다.
저는 오늘도 새로운 경험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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