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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은 것들

‘화’ 날 일입니까?

▶ ‘화’ 날 일입니까?

저녁노을님(수련 시 저의 별칭),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못 받은 것이 ‘화’ 날 일입니까?”

, ‘화’ 날 일입니다.”

, ‘가 나십니까?”

 

 처음으로 참가한 수련회에서 일입니다. 등록 시에 각자에게 일상에서 화난 일을 적어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렵게 생각하여 적은 내용이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받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 내용을 보고서 화를 다스리는 수련 과정을 안내하는 산파님(하비람 수련회의 스탭)이 열 번도 넘게 똑같이 질문하는 내용입니다.

저 또한 그때마다 똑같은 대답을 합니다. 내 돈을 빌려주고 돌려받지 못한 것이 화날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런데 자꾸 그 일이 화날 일이라고 묻는 것입니다.

 

 열 명이 같은 조로 구성되었습니다. 우리 조의 산파님은 각자 적어낸 화날 일들에 대하여 돌아가면서 질문을 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생각을 대답하는 과정입니다. 아무리 수련과정이라고 해도 똑 같은 질문을 계속하여 받는다는 것은 정말로 짜증 나는 일이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하여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화날 일이 아닙니다.’라고 깨달음이 오는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산파님은 원하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밖에 나가 나무에게 질문해보라고 합니다.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을 연습하라고 시켰습니다.  큰소리로 나무에게 질문하고 대답하는 모습이 쑥스럽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건성건성 몇 번 해보았지만 별다른 느낌도 없었습니다. 빨리 시간만 가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횟수가 거듭될수록 일부 사람들은 정말로 화날 일이 아닙니다.’라는 대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화날 일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화날 일이 아니고 그냥 일어난 일입니다.”

 

 이런 식으로 질문과 대답이 이어지면서 자기 생각을 바꾸어가는 과정을 스스로 깨우치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실과 생각, 느낌을 분리하는 연습을 통해 익히고 삶에 적용토록 깨어나라는 것이지요.

그 과정을 깨우친 사람들의 얼굴은 그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편안한 모습들로 바뀌었습니다.

참 희한한 일이었습니다내가 봐도 그건 화날 일이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왜, 어째서 화날 일이 아니라고 대답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를 않았습니다.

 

 몸으로 깨우쳐야 하는데 자꾸 머릿속으로 생각하니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한테 그만 물어보세요.” 참다못해 계속 질문을 쏟아내는 산파님에게 신경질적으로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뒤로 물러나 벽에 기대고 다른 사람들의 수련 모습을 관망하기만 했습니다.

그런 내 모습에 산파님도 더 이상 질문하지 않더라고요. 스스로 깨우치도록 안내하는 것을 포기한 것이지요.

 묻고 또 물어 300번 이상 물어야 합니다. 그런데 열 번도 묻지 않고, 그것도 건성으로, 짜증만 냈으니 어떻게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저만 제외하고 나머지 인원들은 사실과 생각을 분리하는 과정을 잘 수련을 하신 것 같았습니다. 표정들이 부드럽고 편안해 보였습니다.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만 제외하고 모두 잘 수련을 한 표정들이었습니다.

저는 수련이 끝날 때까지 그 과정을 완벽하게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몇 년 후 주유소 운영을 정리하고 이제는 인생의 전반전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후반전을 준비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후반전 버킷 리스트도 작성하면서 말이죠. 그 리스트에는 전에 수련했던 깨어나기수련을 다시 한 번 경험하는 계획을 잡았습니다. 마침 독서 토론 모임인 아틀리에 운영을 모범적으로 잘하고 있다고 하면서 무료로 재 수련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더 깨어나기수련입니다.

 

 6년 만인 20142월에 수련에 참석했습니다. 수련 내용이 업그레이드되어 내용이 조금 바뀌었지만 화 장은 계속되었습니다. 인간사에는 화날 일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번과 똑같이 화날 일을 적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난번과 다른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산파님이 저에게 물어봅니다. “화날 일입니까?” 그런데 화날 일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화난다고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일이었습니다. 화날 일이 아닙니다.” 산파님이 질문을 하는 데 그냥 그런 대답이 나왔습니다.

이 또한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사실과 생각, 느낌이, 분리되는 편안함이 밀려왔습니다

 

 사실은 변할 수 없습니다. 변할 수 없는 사실에 우리는 화를 내고 있습니다. 변할 수 있는 것은 입니다. 내가 변하면 내 생각과 느낌이 변해집니다. 내가 변하지 않으면서 남들 보고 ‘너는 왜 그러느냐?’고 따지면 나만 화가 납니다.

와우! 삶은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그동안 책을 읽어온 효과가 있어서 그랬을까요?

 다른 사람들을 보니 지난번에 내가 겪었던 혼란을 겪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내가 안타까울 지경입니다. 붙들고 설명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깨어나지 못합니다. ‘계란을 자기가 깨고 나오면 병아리가 되지만, 남이 깨면 프라이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말입니다. 정말로 별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화가 난다고 굳은 표정으로 애쓰는 모습들이 보였습니다.

 

 이제는 그러한 깨어난 의식을 일상에서 자동으로 표현될 수 있도록 연습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단지 몇 시간 수련했다고 항상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학이시습(學而時習)입니다.

죽을 때까지 배우고 연습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이므로 습관화될 때까지 의식적으로 연습해야 합니다.

곰이 인간이 될 때까지 말입니다.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신비입니다.'

나는 지금 새로운 경험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