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유 사고
저는 2004년도부터 약 10년 간 전주 외곽에서 조그만 주유소를 운영했었습니다.
직원 두 명을 두고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강행군이었지요. 직원 한 분이 쉬는 날에는 저하고 맞교대 하면서 근무했습니다. 출퇴근 시간에 차량이 몰려올 때는 정신없을 정도로 바쁘지요. 행여 기다리다 그냥 가버리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안절부절못하기도 합니다.
혼유 사고라 함은 주유원의 실수로 경유 차량에 휘발유를 주입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일부러 휘발유 차량에 경유를 반절 정도 섞거나, 경유 차량에 등유를 섞어 운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실수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름값을 절감하기 위해 고의로 저지르는 불법행위입니다. 그런 경우와는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10년 간 운영하면서 치명적인 혼유사고가 네 번 정도 일어났었습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분석해보면 전부가 주유원의 부주의 때문입니다. 주유할 때 순간적으로 정신을
집중하지 않은 결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혼유를 당한 차량들은 운행 중간에 시동이 꺼지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수리하러 정비소에 가면 기름이 달라서 일어난 현상임이 밝혀집니다. 탱크에서부터 오일 라인을 교체하든지 세척하여야 합니다. 수리비는 물론이거니와 수리기간 동안 렌터카 비용까지 부담해 주어야 합니다.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만약 고속도로에서 시동이 꺼지는 사고가 발생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제가 대타로 근무할 때 일입니다. 저희 주유소는 시 외곽에 위치하여 고속도로 톨게이트와 가깝습니다.
저녁때 되었는데 흰색 아반떼 승용차가 들어왔습니다. 제가 주유캡을 여는 중간에 운전자가 저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여기서 고속도로 진입구까지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요?"
평소에도 이렇게 길을 물어보는 운전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한결 친절한 모드로 "아, 예 여기서 우회전해서 조금만 가시면 됩니다." 하면서 안내를 해드렸습니다. 그러자 운전자는 "예, 여기 가득 넣어주세요." 저는 이 말을 듣고 자동적으로 휘발유 건을 주유구에 꽂았습니다. 주유가 끝나고 그 차량은 활기차게 고속도로로 진입을 했겠지요.
밤 9시가 넘어 주유소로 전화가 왔습니다. "저녁때 거기서 주유를 하고 여기 고인돌 휴게소인데요. 쉬고 나서 출발하려는 데 시동이 안 걸려서 카센터 직원을 불렀는데 휘발유 냄새가 난다고 하는데요, 혹시 기름 잘 못 넣으신 거 아닌가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틀림없이 휘발유를 주유해주었거든요.
그런데 그 아반떼 승용차는 경유를 주입하는 경유승용차였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 외관은 휘발유 차량과 똑같은데 기름은 비싼 휘발유 대신 상대적으로 싼 경유를 주유하는 차량들이 출하되기 시작했었거든요.
주유할 때 운전자의 질문에 대답하느라고 별다른 신경도 안 쓰고 습관대로 휘발유 차량인 줄 알고 휘발유를 주유했던 것이지요. 어마어마한 실수였습니다.
정비소까지 견인비용, 수리비용, 수리기간 동안의 일주일 간 렌트비용까지 손해배상을 해주었습니다.
300만 원 넘게 금전적인 손해를 보았습니다. 어깨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은 허망함이 밀려왔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천만다행인 것은 외제 차량이 아니어서 다행이었고, 인명사고가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했던 일이었습니다.
항상 사고는 방심하는 데서 일어납니다. 잘해왔던 일이라고, 잘하고 있다고 순간적으로 방심하면 사고는 항상 내 주위에 있더라고요.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때가 있다고 하듯이 말이지요.
오늘도 겸손한 마음으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하루가 되고자 노력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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