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팅에 관한 추억
오늘은 제 삶의 첫 경험 중 즐거웠던 일(?) 한 가지를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저의 중‧고등 학창 시절은 지금처럼 남녀 공학이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이성교제뿐 아니라 남녀 학생들의 모임에 참여한 적도 없습니다.
여학생들에게 관심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여자 친구를 사귄다는 생각은 해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께서는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 아닌 다른 곳에 신경 쓰는 겨에 무척 엄격하셨습니다.
이성교제는 꿈도 꿀 수 없었고 아예 그런 생각을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남들이 여학생과 만나고 다니는 것을 보면 걔네들은 불량한 학생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남녀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교회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자연스럽게 이성교제가 이루어져서 같이 놀러 다닌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교회를 다니지 않은 저는 그런
기회가 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다니면서 여학생들하고 다닌다는 것은, 교회를 다닌다는 핑계로 여학생을
만나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여학생과 미팅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요새 아이들이야 자유스럽게 이성교제를 하며 대낮에도 대로상에서 서로 입맞춤하는 정도이지만, 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남녀 혼성반으로 수업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초등학교 때에도 남자반 여자반이 따로따로 구분이 되어서 공부했습니다.
집안에는 형제들도 아들만 다섯이니 여자동생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올 일이 없음은 물론입니다.
학교에서는 여학생들하고 같이 수업받은 적도 없고, 대학 때 전공한 학과에도 여학생이 없었고, 또한 제가 다닌 직장도 중장비를 만드는 직종이라 서무를 보는 여직원 외에는 여자들하고 함께 근무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학교에 입학하니 미팅이라고 하면서 남녀가 자연스럽게 만나는 기회가 많이 주어졌습니다.
기계공학과에 다니는 저는 같은 대학 음악과에 다니는 같은 학년 여학생들과의 첫 미팅이 주선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여학생과 만나서 말을 해보는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지금 기억해보면 제 파트너로 나온 여학생은 별로 밉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출중한 편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무난한 파트너인 것으로 주위에서 말들을 한 것을 보면 괜찮은 파트너임이 틀림없었습니다.
어떤 말을 하고 무슨 대답을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서울 아가씨 티가 나는 파트너는 저 같은 촌티 나는 남학생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봅니다. 조금 앉아 있다가 약속이 있어 간다고 하면서 나가고 말았습니다.
처음 하는 일인지라 애프터 신청을 해야 하는지 어쩐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냥 그렇게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참 허무했습니다.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는 심정이었다고 할까요?
그렇게 쓸쓸하게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던 첫 번째 여학생과 만남이었고 미팅이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학교 휴게실에서 그날 파트너였던 여학생을 발견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그 여학생에게 몇 마디 말을 걸어보았으나 아무런 대꾸도 없니 그냥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를 쫓아갔습니다. 같이 차라도 한잔 하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되는지 알았습니다.
그러나 무심하게도 내 말에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걸어만 하던 그 여학생은 정문에서 자기 친구를 만나 뭐라고 속닥거리더니 둘이서 교문 밖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촌티 나고 조그만 녀석이 귀찮게 따라오니 ‘나 좀 도와달라’고 친구에게 말하면서 같이 가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끝까지 따라갈 용기는 없었습니다. 그래 별수 없이 씁쓸한 마음으로 돌아서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다음부터는 만나지를 못했는데 지금 만나도 얼굴은 기억나지 않을 거 같습니다.
또 한 번은 고고장에서 미팅한다고 해서 따라갔는데 누구를 만났는지는 기억이 없고 별천지에 온 기분밖에 들지를
않았습니다. 번쩍번쩍하는 조명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시끄러운 음악이 진동하는 고고장은 그 당시 저에겐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춤은 추지도 못 할 뿐 아니라 그런 분위기가 생소하기 그지없기 때문입니다.
집에 와서 잠자리에 누우면 천정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조명이 한동안 저를 괴롭히기만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납니다. 지금은 그런 극장식 홀에 가면 우선 테이블에 앉아 술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나서는, 나갈 때까지 무대에 나가
막춤도 추고 브루스도 추자고 손을 내밀 수 있을 정도인데 말이지요. 허허!
마지막으로 했던 색다른 미팅은 야외에서 대타로 참석하게 된 사연입니다.
한가한 일요일이 되어 제가 하숙하고 있던 곳과 가까운 곳에서 하숙을 하는 동창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런데 오늘 서울 여자 대학생들과 태능에서 야외미팅이 있는데 한 명 부족하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침 잘 왔다고 하면서 나를 보고 부득불 같이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못해 생전 처음 야외 미팅장에 같이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어색한 가운데에 파트너가 정해지고 통기타 치며 그 당시 유행하던 포크 송도 불렀습니다.
중간중간 술래잡기도 하고 수건 돌리기도 하는 등 그 당시에 야외에서 학생들이 하는 놀이를 하였습니다.
놀이도 생소했지만 저는 파트너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친구들도 내 파트너가 제일 낫다고 샘들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쓰디쓴 첫 미팅의 아픔이 있었는데, 이거는 친구 따라 왔다가 봉황을 잡은 기분이었습니다..
대구가 고향인 순수하고 아담하고 이쁜 여학생이었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로 말을 할 때면 귀여움이 철철 묻어났습니다. 여학교 전체가 귀가 시간이 정해진 기숙사 생활을 하는 관계로 에프터를 할 수 없었지만 다음에 만날 수는 있었습니다.
일요일이 되면 가끔 대학교 기숙사로 찾아가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언젠가는 멀리 시내버스를 타고 공군사관학교에 다니는 친구를 면회하러 가며 데이트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제 여자 친구를 자랑하고 싶었겠지요.
돌아오는 시간이 지체되어 기숙사 귀가시간에 늦을 것 같다고 하면서도 그리 심하게 짜증을 내지 않는 모습이 참 예뻤습니다. 학교 축제 때는 오픈 하우스 행사로 기숙사를 개방하여 일반인 출입이 허가되었는데, 그때도 초대받아 방문도 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면 같은 방에 있는 여자 친구 선배들이 놀리기도 하였는데 그때도 별로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었던 것 같았습니다. 난생처음 여학생들의 기숙사 방을 구경했건만 별다른 감흥은 없고 그냥 긴장의 연속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 학교 교정을 안내해주고 설명도 해주었습니다. 기숙사 오픈 행사에 초대할 정도인 거로 봐서는 제가 싫지는
않았나 봅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헤어지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2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하면서 연락이 끊어진 것 같습니다. 지금쯤 어디서 나처럼 늙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참, 순수했었는데~~ 보고 싶어 집니다.. 지금도 이름은 기억하고 있지요.ㅎ
추억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 즐거운 삶이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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