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 취업
내가 대학 졸업한 년도가 1979년 2월경 입니다.
당시에는 현재처럼 취업문이 좁다거나 구직 때문에 고민을 하는 그런 시절은 아니었습니다.
경제가 활성화되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여 가는 호황기였습니다.
졸업이 가까워오면서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이 서로 자기 회사로 오라고 모셔가는 시절이었습니다.
취업 걱정이 아니라 학점 미달로 인한 졸업 걱정을 해야 하는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4학년 2학기가 시작하자마자 각 기업체에서 학교에 와서 회사 설명회가 자주 열렸습니다.
게시판에는 신입사원 모집광고가 즐비하게 붙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현대자동차에 있는 학교 선배로부터 방문해 달라는 초청장이 나 개인에게 배달되었습니다.
평소에 자동차에 관심이 있던 나는 수업이 없는 날에 울산에 있는 현대자동차 본사에 찾아갔었습니다.
그러나 선배도 만나지도 못하고 소기의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선배 개인이 보낸 것이라서 회사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알지를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나도 연락 없이 찾아간 것이 불찰이었습니다. 방문하기 전에 서로 소통하여 약속을 정한 다음에 움직여야 되는 데 아직 사회생활에 서툰 그 당시의 내 모습이었습니다.
상대방의 일정도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초정장이 왔다고 들이닥친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습니다.
괜히 저만 시간과 경비를 허비한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도 2, 3 군데 기업체에 면접을 보러 다녔습니다. 그 당시는 필기시험은 없고 면접에 통과만 하면 합격이 되는 시절이었습니다. 면접도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절차일 뿐이었습니다.
얼굴 한번 보고 가장 사항 물어보고 그러고 끝났습니다. 복잡한 사항을 질문하고 그런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인데 복잡한 절차로 면접을 하면 사람들이 좋아하지를 않았습니다.
면접을 하고 나면 교통비도 지급되었습니다. 그렇게 면접을 보다가 대우그룹에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합격소식을 듣고 그다지 기쁘다거나 그런 마음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당연히 취업은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하는 일이 힘들어 상상도 못 하는 상황이었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졸업도 하기 전인 1978년 11월2911월 29일부터 신입사원 연수교육에 참가하였습니다.
일주일간의 합숙교육을 받고 마지막 날에 자기가 희망하는 회사를 1,2,31,2,3 지망 회사를 적었습니다.
그중에 제1순위로 희망한 회사는 새한자동차(후에 대우자동차로 변경됨)였고) 제2순위 회사는 대우중공업이었습니다.
제1순위로 새한자동차를 정한 것은, 전에 현대자동차에 갔다가 아무런 성과도 없이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아쉬운 미련이 남아 있었기도 했고, 그 당시 자동차 산업이 인기 있는 업종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많은 인원들이 지원하는 바람에 밀려서 제2순위 회사인 대우중공업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2순위 회사로 발령을 받았지만 전공이 기계공학이라서 평소에 가고 싶었던 회사 중의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별다른 불만은 없었습니다. 또한 근무지가 먼 지방이 아니고 인천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연수 동기 일곱 명이 같은 회사에 배치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하여 아직 졸업은 하지 않았지만 11월부터 회사에 출근하였습니다.
배치받은 부서는 지게차를 생산하는 중기사업본부 제조 1부1 생산기술과 였습니다.
고등학교 5년 선배님이 과장을 맡고 계셨습니다. 처음 입사하여 모든 것이 생소하기만 한 직장에 고교 선배님이 있다는 것이 조금 위안이 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출퇴근을 서울에 있는 친척집에서 했지만 졸업 후에는 회사 내에 있는 기숙사에서 생활했습니다. 사무실까지 걸어서 5분 정도면 되었습니다.
거리도 가깝고 그래서 아주 편안했습니다. 남자들만의 생활공간이지요.
금녀의 집이긴 한데, 여자분이 온다고 해서 그리 싫어할 사람은 아마 없지 않을까요?
금남의 집은 있지만 금녀의 집은 없으니까 말입니다.
방마다 세 명씩 생활했습니다. 소속된 부서도 각기 달랐습니다.
각자의 업무들이 바쁜 건지, 일과 후의 개인적인 일들이 바쁜 건지,, 우리 방 식구 전체가 모이기는 참 어려웠습니다.
일과 후에는 밤늦도록 카드놀이를 즐기는 방도 있었고 여럿이 모여 술과 담소를 즐기는 방, 현업에 필요한 자료와 어학을 공부하는 방들도 있었습니다. 어쩌다 들려오는 소문에는 봉급의 반절 이상을 카드 판에서 잃었다는 풍문도 들리기도 하였습니다. 저도 어쩌다 한두 번 해봤는데 상대가 되지를 않았습니다. 포커페이스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럭저럭 8개월 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였습니다. 학교 다니면서 12년 동안 개근상을 받고 생활한 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사람 중에 가끔 지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같은 울타리 내에 생활하면서 아침에 늦게 일어나 사무실에 지각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가 저로서는 힘들었습니다.
성격 나름인 것 같습니다.
결혼을 하여 조그만 아파트에 신혼방을 차린 후에는 기숙사와는 이별했지만, 한 동안 추억이 깃든 장소입니다.
IMF를 맞이하여 희망퇴직을 하기까지 20년 동안 청춘을 바쳐 근무한 회사였습니다.
기술제휴 회사인 일본과 미국도 한 달간의 기간으로 연수도 갔다오기도 하였습니다.
입사할 때에는 정년 때까지 근무하겠다는 각오였지만 상황은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는 지금 새로운 경험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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