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과 신혼여행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교 3학년에 복학을 했습니다.
여름방학이 되었건만 군대 가기 전에 이수하지 못한 과목의 학점을 따기 위해 하계강좌를 수강해야 하는 관계로 전주로 내려가지 못하고 서울에 있었습니다.
심심하던 차에 고교 때부터 같이 ‘오뚜기’‘오뚝이’라는 모임의 일원인 친구가 소개팅을 해주었습니다.
종로에 있는 다방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같은 고향에서 학교를 나온 전주 여자였습니다.
키도 크고 사글사글하게 웃는 얼굴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말이 없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제짝은 활달한 여성을 만나고 싶었는데...... 싫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우리는 자주 만났습니다.
처갓집도 방문하고 장인 장모 될 분과도 인사를 하였습니다.
저를 미래의 사위로 인정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결혼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때 저는 프로포즈 같은 것은 별다르게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젊은이들이 하는 이벤트 같은 프러포즈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결혼 전에 신랑 신부 사진 촬영 같은 것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런 것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냥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와인 한잔 하면서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정도의 말이 이심전심으로 통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색다른 형식의 프로포즈를 하지는 못 했을망정 어느 정도의 격식은 있어야 기억이 날 덴데......,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지금 다시 하기도 쑥스러운 것 같고......
학교도 졸업하고 취직도 하였습니다.
인천에 있는 회사 기숙사에서 생활하다가 결혼할 시기가 되어 집안의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집안의 첫 며느리만큼은 자신이 선택한 여자를 며느리로 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한 상황에 사귀고 있는 여자가 있다고 말씀드리자 보지도 않고 반대의견을 말씀하셨습니다.
얼굴을 맞대고 설득하고 말고 할 시간적인 여유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에서 자주 보는 청춘남녀의 결혼이 집안의 반대로 인한 갈등으로 마냥 행복하지 않은 출발을 하는 모습이 연상되었습니다.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기숙사에서 편지지 여덟 장으로 된 장문의 편지를 쓰면서 저의 결심을 강력하게 피력했습니다.
험난한 길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끝까지 반대를 하면 막다른 방법으로 할 수밖에 없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한 것 같았습니다.
편지를 부치고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데, 일주일 만에 아버님으로부터 답장이 왔습니다.
요점은 ‘네 생각대로 페어플레이 하자’는 내용이었습니다. 한시름 놓았습니다.
끝까지 반대를 하면 그냥 데리고 살려고 했었거든요.
이제는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리고 새 출발을 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었습니다.
두 분이 돌아가신 뒤에 유품을 정리하는 중에 그때 제가 보낸 그 협박성 편지를 보았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제가 불효자임이 확실했습니다.
그 편지를 받고 어떤 마음이 드셨을까를 생각하니 죄송스러운 생각이 올라옵니다.
결혼식장과 주례 및 피로연 장소는 아버님께서 정하셨습니다.
저로서는 처음 하는 일이라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지를 못했습니다.
지금 젊은이들처럼 미리 식장을 정하고 신혼여행계획을 세워서 예약하고 그렇게 해야 되는 지를 아예 알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냥 결혼식 당일에 참석하고 신혼여행은 경주로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지금은 신혼여행의 필수 코스인 해외여행은 하지 못할지라도 제주도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냥 결혼식에 참석만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주 형편없는 짓이겠지요. 그렇게 결혼식을 했습니다.
교통편도 예약해야 한다는 것조차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결혼식 당일 아침에 이발소 갔다가 주례 선생님 모시고 식장에 가기만 했습니다. 끝나고 나서는 폐백 드리고 고속버스 타고 경주로 가기만 했었습니다. 피로연 식당에 가서 하객들에게 인사 올리는 것조차 하는 줄 몰랐었습니다. 경주에 가서도 어디에서 지낼 것인지에 대한 호텔 예약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약이라는 절차에 익숙한 제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한심한 쑥맥이었습니다. 경주에 내리니 숙소를 안내해준다는 택시기사를 따라서 허름한 모텔 같은 데 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예쁜 신부는 말없이 잘 따라왔습니다.
다음날 새벽에 석굴암 가서 일출을 보기로 했었는데 가지도 못하고 늦잠을 잤던 기억만 납니다. 경주에 가서 일박하고 부산에 살고 있는 처남 집을 방문하여 좋은 식당에서 식사를 같이 한 기억밖에는 없거든요. 어떻게 신혼여행을 했었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를 않습니다. 추억거리도 없고요. 한번 뿐인 신혼여행인데 저처럼 아무런 계획도 없이 갔다가는 같이 사는 동안 그때 일로 잔소리 듣는 남편들이 많겠지요?
별도로 계획을 세워 구혼 여행이라도 다시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가까스로 결혼 30주년이 되는 해에 평생 처음으로 제주도 여행을 2박32박 3일 같이 갔다 왔습니다.
그 당시에 남들은 수학여행 갈 때 자주 가는 곳이겠지만 저는 처음 가는 제주도였습니다.
학교 다닐 때 꼭 수행여행 갈 때쯤이면 예상치도 않았던 대형 사고로 인하여 번번이 가지를 못했습니다.
저는 처음 가는 제주도가 좋았다는 느낌이지만 제 아내는 어떤 느낌이었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아마 좋았을 것이라고 유추해보겠습니다.
몇 년 전에 한 번 더 제주도를 갔다 왔습니다만 다음에는 해외로 여행을 가야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불만 한 마디 안 하고 묵묵히 동행해 준 아내가 그냥 고맙기만 합니다.
날 잡아서 여행도 다니고 분위기 좋은 장소에서 지금까지 지내 온 삶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미처 하지 못한 프러포즈도 겸해서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결혼 40주년 되는 작년에도 해외에 가지 못하고 또 제주도에 갔다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하루 늘려 3박 4일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나는 지금 새로운 경험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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