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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웠던 첫 경험

첫 자녀 출생

첫 자녀 출생

결혼 한지 19개월이 지난 1981829일에 첫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제가 아들만 있는 집안에서 자라서 그런지 내심 딸이기를 바랐습니다.

그렇지만 아들이건 딸이건 별다르게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요.

나도 모르게 첫아이가 유산을 하고 나서 태어난 자식이었습니다.

아마 유산 된 아이가 딸이었는지 모르는 일이겠지요.

 

만삭이 된 어느 날 밤에, 아내는 배에 통증이 온다고 하면서 주섬주섬 가방에 옷들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애가 나올 것은 산통이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숙맥인 저는 아내와 같이 택시를 타고 평소에 다니는 산부인과에 갔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자 아기가 태어나면 알려준다고 하면서 간호사가 정해 준 입원실에서 대기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깜빡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잠을 깨우는 소리에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일어난 나에게 간호사는 잠자면서 아들을 보았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순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저 담담하기만 했었습니다.

남들처럼 첫아들을 얻은 기쁨에 들떠서 호들갑을 떤다든가 그러지도 않았습니다.

 

산모들이 해산 시 고통스러워 할 때 남편들이 옆에 같이 있어주면서 산고를 나누어야 한다는 말을 하던데 저는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참 무심한 남편이어서 그랬을까요? 그런데도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을 하지 않은 아내의 모습에서......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포기하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산고를 얼마나 심하게 겪었는지에 대한 말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요새는 해산하고 나서 거의 한 달가량 산후조리원에 있으면서 몸조리를 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지만 아내는 일주일 정도 있다가 바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당시는 집에서 몸조리 하는 것이 통례였던 거 같습니다.

둘째로 딸이 태어날 때에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제가 알기로는) 태어난 것 같습니다.

그때는 자고 있지는 않았지만 병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둘째가 태어났었거든요.

 

둘째 때도 첫째 때와 같이 산후조리원에 있지도 않았고 시가나 처가에 가서 몸조리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일주일 정도 병원에 있다가 바로 집에 왔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저는 못된 남편이었고 뭔지 알지도 못하는 한심한 초보 아빠였습니다. 그때도 역시 그렇게 해야 되는 것인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애가 울 때는 안아주면 버릇이 나빠진다고 하면서 시끄럽다고 헤드폰을 끼고 옆방으로 피신하기도 했습니다.

남들이 다하는 똥 기저귀 한번 갈아 준 기억이 없습니다. 목욕할 때 옆에서 도와주기는 했지만 한 번도 제가 직접 목욕을 시켜준 기억도 없습니다.

이유식 한번 만들어 준 기억도 없습니다. 시어머님이나 장모님이 오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의 젊은 아빠들처럼 나서서 도와주지도 못했습니다.

전적으로 아내가 해야 하는 일인 줄만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로 빵점짜리 아빠였습니다. 이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미안하기만 합니다.

 

지금 그때 일을 회상하며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 회환의 눈물이 왈칵 쏟아집니다.

눈가가 촉촉이 젖어옵니다.

정말로 한심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내의 고통을 조금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도와주지도 못한 제 모습을 보며 미안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 나에게 불평불만 한마디 하지 않은 아내였습니다.

알아주지 못하고 도와주지 못해서 정말로 미안합니다.

정말로 저는 날로 먹기만 한 나쁜 남편이었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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