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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웠던 첫 경험

자녀 결혼

자녀 결혼

 저는 11녀 두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터울은 2년차입니다. 첫 째가 아들이고 두 째는 딸아이입니다.

둘 다 별다른 탈 없이 성장하여 성년이 되어 결혼을 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부모가 서로의 짝을 정해주지 않아도 되는 시대인지라 각자 인생 동반자를 때가 되어 데리고 왔습니다.

다른 집들은 나이가 차도 짝이 찾지 못해서 적령기를 놓칠까 봐 부모들이 노심초사하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우리 두 놈들은 적기에 자기 짝들을 정해서 소개를 시켰습니다. 결혼하는 데 그런 쪽에서는 걱정을 안 해도 되어 다행이었습니다. 남들과 비교해서 빠지지 않는 외모를 물려준 부모의 덕도 있었겠지만. 그런 걱정은 애초에 하지를 않았습니다.

데리고 온 짝들도 외모는 물론 성격도 차분하게 보였습니다.

부모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반대를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안 될 일도 아니지만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혼자서 전주에 있으면서 주유소 운영을 하고 있던 때였는데 좀 난감한 소식이 전해져 왔습니다.

, 글쎄 두 놈들이, 자기들이 먼저 식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은, 상대 여자가 자기보다 한 살이 더 많은

연상인 관계로 여자 쪽 부모님들이 재촉을 한다는 것이었고, 딸은 상대 남자 쪽 아버지께서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아서

현직에 계실 때 식을 올리고 싶다고 하면서 재촉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내는 이런 난감한 상황을 멀리 있는 나에게 전화를 하면서 정리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 난감한 상황을 내가 나서서 정리해야만 했습니다. 시간을 내어 인천에 올라갔습니다.

두 녀석을 앞에 놓고 서로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들어봐도 위의 상황과 마찬가지로, 서로 년도가 바뀌기 전에 식을 올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서로에게 이해를 시키고 교통정리를 해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이 순서로 봐서는 아들이 먼저 가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남자들 보다 여자들이 더 어린 나이에 식을 올리기 때문에 나이순서가 아니더라도 딸을 먼저 보내는 것이 순서일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보내는 쪽에서 보면 시댁에 가서 괜히 눈치 보이도록 여건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식으로 아들 녀석을 이해시켰습니다.

그리고 해를 넘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사둔 댁의 의견을 반영하여 같은 해에 5개월 간격으로 식을 올리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6월과 11월로 날짜를 정했습니다. 이렇게 두 녀석의 결혼식 순서와 일정은 어느 정도 해결되었건만 그 다음 부터는

우리 부부가 해야 할 일들이 걱정이었습니다. 해마다 혼례를 치르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인데 5개월 간격으로 혼례를

치르려고 하니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혼 준비는 최소한의 것만 해주는 것으로 합의를 하였습니다. 순차적으로 양가 부모들과 만나 상견례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쪽 사정도 말씀을 드리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바빠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결정을 해주고 바로 전주로 내려와 주유소 운영에 신경을 써야했기 때문에 아내 혼자서 다 감당을 하였습니다. 미안하고 고마울 뿐입니다.

주유소 운영도 신통치 않아서 경제적인 협조도 풍족하게 해주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최소한의 것만 해주기로 했다고

하지만 한 해에 두 녀석의 결혼을 치른다는 것은 비용이 이만전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주유소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내는 빚을 내고 대출을 받아서 최소한의 혼수 준비를 했을 것입니다.

그때 받은 대출을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하고 별수 없이 신용상의 문제가 초래되었다는 말을 듣고 남편으로서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두 녀석들은 자기들이 결혼식을 하기 위해 사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을 알아서 처리했습니다.

식장 예약에서 신혼여행에 관한 사항 및 청첩장 인쇄에서 발송하는 것까지 알아서 처리했습니다.

저는 식장에 입고 갈 양복을 준비하는 데만 동행을 하였습니다. 이 또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아비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 같은 마음에 미안할 뿐입니다. 아무튼 결혼해서 둘이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었지요.

부족한 것은 둘이서 채워가면서 말이지요.

 그런데 딸내미 결혼식을 20여일 정도 남겨놓은 시점에 병원에 입원해야만 하는 상황이 돌발하고 말았습니다.

5월 말에 모처럼 인천에 와서 동문 체육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워낙 운동을 좋아하는 저는 각종 경기에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폐회식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후배들이 도전해오는 축구 시합을 거절하지

못하고 출전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무리한 결과일 것입니다. 공격해 오는 후배를 막다가 오른쪽 발을 쭉 내밀어 방어를 하는 순간 종아리 부분에 심한 통증이 왔습니다.

근육경련이 온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계속 통증이 와서 게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기 의사들이 진찰을 하더니 인대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고 합니다.

 

 그날 바로 병원에 가서 인대 연결 수술을 하고 입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난생 처음으로 마취하고 수술실에 들어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신부 입장 때 딸의 손을 잡고 같이 입장을 해야 하는데

목발을 집고 가야 될지를 걱정하고 있어야 하는 처지에 처하고 만 것입니다. 다행히 고교 선배인 원장님의 헌신적인

치료 덕분에 목발을 집고 입장하는 상황은 면했지만 당황했던 순간이었습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지금도 우측 종아리엔 커다란 수술 자국이 있지만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고 예전처럼 열심히 운동도 할 수 있습니다, 미관상 좋지는 않지만 내가 보이지 않는 뒤쪽이니 의식하지 않고 다니면 그만이겠지요?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신비스러움입니다.

나는 지금 새로운 경험 중입니다. 이 또한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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