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내 집 장만
회사에 입사하여 처음에는 대학 때부터 같이 있었던 반포의 외삼촌댁에서 인천으로 출퇴근을 했습니다.
통근 버스를 놓치면 가끔 지각도 했습니다. 출퇴근이 힘들어 입사 6개월 후 회사 내에 있는 기숙사에 입주했습니다.
결혼할 때까지 8개월 정도 생활했습니다. 결혼 후에는 부모님께서 지원해주신 자금을 바탕으로 주안 주공아파트에 전세로 입주했습니다. 소형인 13평짜리였지만 신혼부부가 살기엔 충분했습니다. 그곳에서 둘째가 태어날 때까지 살았습니다.
입사 후 5년 정도 지난 시점에 그룹 차원에서 포일지구에 사원아파트 분양공고가 났습니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넓은 대지에 3층짜리 아파트였습니다. 25평형에 신청하여 3층 맨 좌측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가운데 로열 층이 아니어서 서운했지만, 난생 처음 제 이름으로 집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사원용이라서 혜택을 주었던 관계로 수월하게 구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관계로 새벽에 일어나 통근버스를 타야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다소 힘들었지만 그것도 습관이 되다 보니 다닐만했습니다.
퇴근 버스를 타지 못할 때는 교통편이 복잡하여 2시간 가까이 걸리다 보니 가급적이면 퇴근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핑계로 눈치를 보며 칼 퇴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천에서 이사 짐을 실은 트럭을 타고 오면서 차가운 칼바람이 문틈으로 들어왔지만 신바람이 났었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집들이 잔치도 했습니다. 난생 처음 집 전화도 신청하였습니다.
마침 고려대에 합격하여 서울로 등교하는 막내 동생을 데리고 5년 정도 생활했습니다.
지금은 개발이 되어서 별천지가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우리 아파트 단지만 덜렁 있는 한적한 택지였습니다.
처음에 통근버스에 가득하던 동료직원들이 하나둘씩 타지로 이사를 가기 시작했습니다.
통근버스 탑승 인원이 달이 갈수록 줄어들었습니다. 나중에는 10여 명 정도 인원만 이용할 정도였습니다.
이대로 가면 통근버스가 운행 중단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회사가 있는 인천으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하고 집을 매도하고 주안에 아파트를 구입했습니다.
포일을 떠나고 난 후 얼마 되지 않아 이사 갈 당시 금액의 배 이상으로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다는 소식에 아내에게
서둘러 팔았다는 핀잔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조금만 기다렸다 팔았으면 상당한 이익을 얻을 수 있었거든요.
전 돈 벌 운수는 없나 봅니다.
그 아파트에서 다른 동으로 한 번 이사하고 난 후 재개발이 될 때까지 살았습니다.
그 이후에는 제 소유의 집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저 혼자 전주로 내려오고 난 후 지금까지 15년 넘게 같은 집에서 전세로 살고 있습니다. 전세로 사는 동안 연수동에 신축 아파트를 분양받았습니다. 그러나 자금이 부족하여 전세로 내주는 바람에 입주하여 살지는 못했습니다.
그 후 전주에서 제가 하는 사업의 실패로 인하여 전세 놓은 아파트를 경매로 처분한 뒤에는 내 집을 갖는다는 꿈을 접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몇 년 후면 재개발된다고 합니다. 어찌 제가 살았던 집은 다 재개발되는 운명을 맞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이제는 재개발되면 영구 임대주택을 분양받아서 둘이서 살아갈 예정입니다.
커다란 집보다는 마음이 편안한 가운데 노후를 즐기기로 합의하였습니다. 내 집은 없어도, 집 주인이 이사 가라고 하지 않으니 내 집 같습니다.
나는 지금 새로운 경험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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