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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날 때마다

오도기 모임

오도기 모임

 ‘오도기’라는 뜻은, 오뚝이라는 말을 좀 순화한 말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만나고 있는 친구들의 모임 이름입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 7명이 의기투합하여 나이가 들더라도 영원히 우정을 나누기 위해 결성한 모임이지요.

같이 어울리며 지내다 보니 뜻이 맞는 놈들끼리 뭉친 것입니다.

 

 그러니까 벌써 50년이 지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모임이 유지되는 것을 부러워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이제는 부부동반으로 해서 매년 3~4회 정도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만날 때마다 12일 동안 같이 지내면서 옛 추억에 빠져들지요.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부인들이 내놓은 음식 맛을 즐기면서 학창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며 향수에 젖기도 합니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만나는 모임은 아니지만 만나면 그저 즐겁기만 한 오도기들입니다밤늦게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늦은 아침식사를 즐기고 각자 위치로 돌아갑니다.

 

 세월이 지난 각자의 모습은 각양각색으로 변해 있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학창 시절의 교정을 거닐고 있지요. 머리가 벗어진 친구, 하얗게 변한 머리칼, 배가 불쑥 나온 친구들 등 옛날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직업도 다양합니다. 아직도 현업에서 뛰고 있는 두 명의 의사친구, 사업하고 있는 친구, 회사에서 퇴직하여 제2의 직장에 다니고 있는 친구, 그리고 즐겁게 놀면서 책이나 읽고 있는 영혼이 자유로운 나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다들 각자의 일상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삶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이제는 만나서 나누는 대화의 주제도 변하고 있습니다. 친구 중에는 몸이 불편하여 병원 신세를 지고 있기도 합니다.

언제부턴가 자연스럽게 웰-다잉에 대한 주제로 얘기를 하면서 건강관리 비법에 대한 토론도 합니다. 그러면서 치매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 얘기를 합니다. 어떤 친구는 치매가 오기 전에 죽음을 택하겠다고 큰소리를 치기도 하지요.

 

 나이가 들어 몸이 예전처럼 움직여지지 않음에 미래에 대한 불안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항상 지금 모습으로 살아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있기 마련입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건강에 대한 불안이 제일 큰 것 같습니다. 그래도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는 지금 우리가 즐기고 있는 삶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그동안의 사는 모습도 변했습니다. 부부가 결별을 하고 혼자의 삶을 즐기고 있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일찍 결혼하여 벌써 장성한 손주를 본 친구도 있고 이제 갓 태어난 손주의 재롱으로 정신을 뺏기다시피 손주를 돌보고 있는 친구도 있지요.

가끔 손주들하고 전화통화를 하는 친구를 보면서 부모들의 사랑은 내리사랑임을 확인하기도 하지요. 어떤 짓을 해도 이쁘기만 한 모습에 정신이 혼미할 정도입니다. 내 몸이 아프더라도 손주 돌보는 것을 거절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훨씬 전에 일찍 결혼을 한 친구가 손주들 하고 노는 재미에 푹 빠져 모임에 등한시할 때 우리는 그 친구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모두들 핀잔을 주기도 했지요. 그런데 이제는 거의 각자의 손주들을 보고나서는 그런 행동을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들이 그런 모습으로 손주들에게 푹 빠져 있으니까 말이지요.

 

 아직 손주를 못 본 사람들은 그 맛을 알지 못하니까요. 차원이 달라집니다. 자식을 얻었을 때의 느낌과 손주를 얻었을 때의 느낌이 다름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절대 알지 못합니다. 정말로 삶은 경험해야 할 신비스러움입니다. 그리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자녀들이 있는 친구에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만

 

 우리가 앞으로 얼마동안 지금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서 회포를 풀 수 있을까?

인생의 황혼을 맞이하면서 품위 있는 노인으로 늙어가기를 바랍니다. 어떤 가수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말을 하지만, 늙기 싫어하는 마음을 역설적으로 익어간다고 표현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이 말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인기 있는 노래가 되었지요.

 

 고대부터 불로장생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 왕들도 있지만, 어찌 자연의 이치를 거역하리오. 때가 되면 조용히 가야 합니다.. 미련 없이 가기 위해서는 건강하게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즐겁게 만나고 놀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젊었을 때는 젊음을 즐기고, 나이가 들었을 때는 또 나이 들은 때를 즐기면서 베풀면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젊은이들에게 나이 먹었음을 위세 떨지 말고, 존경받는 할아버지로 할머니로 그렇게 살다 가기를 소원해봅니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가며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평균 수명이 늘었다고 하지만, 그저 병원 침대에 누워서 삶을 연명하는 처지가 되어 자식들에게 걸림돌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오래 사는 것이 축복만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건강하게 삶을 즐기다가 내가 나누어줄 것 다 주고 홀가분하게 삶을 마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팔팔하게 어울리며 재미있는 짓거리들을 하면서 지내던 놈들이 벌써 이렇게 세월이 흘러갑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좋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요?

 

 아침 뉴스를 보니 박원순 서울시장이 삶을 마감했다는 불행한 소식을 접했습니다. 우리가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이지만,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데 벌써 가다니 가슴이 먹먹하기만 합니다.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가족분들에게 한 없는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나는 오늘도 새로운 경험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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