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병 연대 인사 행정병
6주간의 신병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배치받은 곳이 제가 훈련을 받은 신병교육대 조교였습니다. 군대에서 말하는 자충병이었지요. 작대기 하나 달자마자 제 밑에 졸병들을 통솔하는 재미는 솔솔 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재미있게 부대끼면서 신병교육대 조교로 열심히 근무했습니다. 계급도 이제는 작대기 두 개로 진급했습니다.
그런데 신병교육대 조교는 상병 이상으로 배치하라는 군 사령부의 지침에 의거 어쩔 수 없이 사단 내에 있는 연대본부로 전출하게 되었습니다. 훈련된 조교로서 신병들을 잘 지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는데 아쉬운 마음에 따블 백을 쌌습니다. 인솔자를 따라 연대본부 인사과에 가서 전입신고를 하였습니다. 신병교육대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위치에 있었습니다.
전입신고를 하고 작성한 신상 신고서를 본 인사과 선임 하사관이 본부 인사과에서 근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대학에 재학 중이고 글씨도 남들보다 잘 썼던 신상신고서를 보고 내린 조치였습니다. 연대본부 인사과 방위담당으로 배치를 받았습니다. 전라북도 3시(전주, 익산, 군산) 3군(완주, 익산, 옥구)에 있는 방위 소집병에 대한 인사관리를 하는 보직이었습니다. 막강한 보직이었습니다.
방위로 소집된 병력에 대한 근무지 배치, 변경 및 소집해제에 대한 인사명령을 내리는 보직입니다. 더구나 각 지역 방위병에 대한 근무상태 점검 및 그에 따른 조치까지 할 수 있습니다. 방위병 병무행정에 관한 총괄업무를 관리하는 막중한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방위담당 선임하사관이 있었고 고참 선임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임병의 제대 날짜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하루라도 빨리 후임병을 받아 업무에 대한 습득이 필요한 시기였습니다. 제가 적기에 전입해 온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배웠습니다. 제 사수인 선임병은 곧 제대를 해서 선임 하사관님이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제가 하루라도 빨리 업무를 숙지해야 본인이 수월해지기 때문이겠죠. 곧바로 업무에 익숙하여 전적으로 제가 할 수 있게 되어 선임 하사관은 확인만 하는 상황에 까지 도달하였습니다. 그리 어려운 업무는 아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전주시 병력이 소집되었을 때입니다. 근무지 지정을 해주어야 합니다. 여러 경로를 통하여 저에게 희망 근무지에 대한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외지에 있는 기동타격대보다 시내에 있는 동사무소나 예비군중대에서 근무하기를 원하는 청탁입니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주거하는 집과 가까운 지역을 선호하는 것입니다. 현역병보다 근무기간도 짧고 훨씬 편안한 상태에서 병역의무를 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더 편한 곳에서 지내기를 선호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소집된 인원의 80% 이상이 청탁이 들어옵니다. 조금이라도 연줄이 닿는 사람들을 통해서 청탁이 옵니다. 무시할 수 있는 일만은 아닙니다. 여러 경우를 고려하여 근무지를 지정하는 인사 명령지를 기안하여 결재를 올립니다. 기안지 뒤에는 청탁이 들어온 쪽지를 첨부하여 결재를 올리지요. 결재가 끝나면 인사 명령지를 인쇄합니다.
지금처럼 컴퓨터로 작성하는 시절이 아닙니다. 가리방이라는 등사판에 철필로 기름종이를 긁어 명령지를 작성했습니다. 그렇게 긁어 쓴 명령지를 등사기에 붙인 후 등사 잉크를 묻혀 롤러로 밀어서 인쇄하는 옛날 방식입니다. 모든 문서 작성을 손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손 글씨 솜씨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전입신고 시 작성한 신상 신고서 글씨를 보고 저를 선택한 것 일 겁니다. 그리고 가방끈도 길었고요.
한 번은 이러한 일도 있었습니다. 전주 병력이 소집되면 저의 연고지인 관계로 고교 동기 및 선후배들도 있습니다. 그러한 인원들을 별도로 모아서 희망하는 근무지를 내가 해 줄 수 있는 선까지 조치를 해주었습니다. 저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인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만난 친구들로부터 그때 참 고마웠다는 인사를 받기도 하고 식사 대접도 받았지요. 얼굴 기억도 없는 동문들이 인사를 할 때마다 잘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였지요.
그런 상황에서 6~7개월이 지난 후 군 사령부에서 ‘방위 소집자 인사관리 방침’이라는 책을 배포하고 나서 한 달에 한 번꼴로 감사가 나왔습니다. 예전부터 만연되어 있었던 병무행정에 대한 부조리 척결 차원에서 시행된 것입니다. 거기에는 근무지 지정 시에 준수해야 하는 사항도 있습니다. 자기 주거지와 가까운 곳에는 지정을 하지 말라는 사항도 있었지요. 방침에 준하여 가끔 예하부대에 대한 검열도 선임 하사관님과 같이 나가기도 하였습니다. 그때는 괜히 목에 힘이 들어가기도 하지요.
또한 근무 일자가 만기가 되어 방위소집해제 시기가 되면 소집해제 명령지를 작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소집해제증도 발행해야 합니다. 근무일지에 찍힌 근무확인 도장 숫자를 헤아려 정확히 365일이 되는 날짜에 소집해제 명령을 하고 소집해제증을 발행해 주어야 합니다. 현업에 복직하거나 취업서류를 미리 제출해야 하는 방위병들은 소집해제증이 우선적으로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도 하루라도 빨리 받으려고 청탁 아닌 청탁이 들어옵니다. 정말 막강한 보직이지요?
그 당시 인사행정업무에는 많은 청탁이 들어왔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떤 조직에서나 인사행정은 중요한 업무입니다. 그러한 업무가 정실에 이끌려 휘둘리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의 신뢰에 금이 가는 일이 없이 공평무사하게 처리되어야 불평불만이 없는 깨끗한 사회가 된다는 것은 상식이겠지요. 그런데 그때는 그러한 일이 정착이 되지 않아서 청탁이 관행처럼 이루어졌던 시기였습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고 송년이 될 때쯤 이면 상관으로부터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를 ‘어이 방위담당, 금년 망년회 준비는 잘 되어 가는가?’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군대 담배가 보급되었지만, 그 당시 사회에서 최고급 담배인 솔 담배나 양담배를 즐겼던 기억이 납니다. 다 옛날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제대할 때까지 방위 담당업무를 책임감있게 수행하였습니다. 제 후임으로 온 조수가 익숙하지 않아서 개구리복을 입고 사단 문을 나설 때까지 관련 업무를 하기도 했습니다. 제대를 하고 나서도 방위 업무를 담당했던 이유로 동사무소에 예비군 신고를 하지 않아도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방위병이 다 알아서 처리해 놓아 편의를 좀 보았습니다.
아, 갑자기 군대생활하던 때가 그리워집니다.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신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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