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병대 조사계 출두
5형제 중 장남인 제가 1974년도에 우리 집안에서 처음으로 군대에 갔습니다.
어머님께서는 행여 전방으로 배치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어 아버님을 졸랐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훈련받았던 후방 예비사단에 배치를 받았습니다.
집에서 시내버스로 가능한 가까운 위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사단 신병교육대에 배치를 받았습니다. 작대기 하나를 달고도 제 밑에 졸병들이 200명 정도 되었습니다.
다른 부대에 배치받은 동기들보다 힘들고 궂은일은 거의 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입니다. 훈련병들에게 지시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렇게 편한 가운데 졸병생활을 하고 있는데 군 사령부에서 방침이 변경되어 하달되었습니다.
신병교육대 조교는 상병이상으로 배치하라는 지침에 의거 6개월 만에 보병연대로 전출되었습니다.
면담하는 과정에서 연대 인사과 방위담당 계원으로 보직을 받았습니다. 연대에 소속되어 있는 3시(전주, 익산, 군산) 3군(완주, 익산, 옥구)의 방위병들에 대한 행정관리업무였습니다. 우선 병력이 소집되면 근무지 지정 명령을 냈고, 근무지 이탈자들에 대한 수배의뢰, 근무일이 마무리되었을 때 소집해제 일자 등 방위병들에 대한 인사업무 등 제반사항을 관리하는 보직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끗발 있는 자리였습니다. 제가 전입 온지 바로 사수가 제대하는 바람에 얼마 되지 않아 사수가 되었습니다.
제가 보직을 받기 전에는 방위병에 대한 인사관리가 지금과 같지 않게 허술했습니다. 제가 사수가 되고 바로 군 사령부에서 ‘방위소집병 인사관리 방침’이라는 매뉴얼이 제정되어 하달되었습니다. 그리곤 그 매뉴얼에 의거하여 한 달이 멀다 하고 수행 여부에 대한 검열이 이루어졌습니다. 지금도 청탁이라는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병력이 소집되면 80% 이상이 근무지지정에 대한 청탁이 들어왔습니다. 그러한 것들을 조정하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님이 계시는 가까운 곳에서 그렇게 별다른 어려움 없이 군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대 2개월여를 남겨놓고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예하부대에서 방위병이 근무지를 이탈하여 출근을 하지 않는다는 공문이 접수되어 헌병대에 수배 의뢰를 했습니다. 그러자 하루가 지나 보안부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수배해제 조치를 해달라는 전화였습니다. 바로 선임하사님께 보고하고 수배해제의뢰 공문을 작성하였습니다.
마침 결재권자인 인사장교님이 외출 중이어서 제가 대리사인을 해서 공문을 발송했습니다.
이게 문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대리 사인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수배해제의뢰 한 내용이 문제였습니다.
다음 날 인사과 사무실에 헌병대 백차가 들이 닥쳤습니다.
헌병대와 저희 연대본부와는 같은 사단 내에 있어 그리 멀지 않습니다. 들어오자마자 방위담당을 찾습니다. 그러면서 왜 근무지에 출근하지도 않은 방위병을 수배해제 의뢰했냐고 하면서 백차에 태우고 끌고 갔습니다. 헌병대 가서 사실대로 얘기 했습니다.
그리고 헌병대보다는 보안대가 더 끗발 있는 부대여서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 같은 생각은 들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보안대에 상황 파악을 한 후에 돌려보내겠지 하고 간단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끌고 가서는 조사계장 책상 옆에 3시간가량 무릎 꿇게 하고선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점점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장시간 무릎을 꿇고 있자니 다리에 통증이 오고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벗어날 수 있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조사계장이 퇴근시간 때까지 그렇게 있고 하더니, 그날 헌병대 내무반에서 취침하고 내일 다시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별수 없이 낯선 헌병대 감방 옆 내무반에서 하룻밤을 잤습니다. 그래도 제가 고참병장이라서 그런지 잠자리도 깔아주고 불편하지 않게 해 주었지만,, 밤새도록 옆 감방에서는 우당탕탕 거리며 기합 받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그리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다음날에도 조사계장은 그냥 옆에만 있게 하고 별다른 조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루하기도 하고 빨리 헌병대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았습니다. 화장실에 볼일 보러 간다고 하고 바로 연대로 아무 말도 없이 돌아왔습니다.
돌아오자마자 인사장교님에게 보고 드리고 외출 허가를 얻어 시내버스를 타고 아버님에게로 찾아갔습니다.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헌병대에서는 전날 내가 사라졌음을 확인하고 저를 찾았던 것 같습니다. 아침에 또 헌병대 백차가 와서 데리고 갔습니다. 조사계장은 간단하게 왜 말도 없이 사라졌냐고 지나가는 말처럼 물어보더니 조금 있다가 돌아가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아마도 보안대로부터 무슨 연락을 받은 거 같았습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대로 돌아왔지만 하마터면 헌병대 감방에서 제대 말년에 고초를 당할 뻔했습니다..
형무소, 영창. 구치소. 이런 말들은 듣기만 해도 별로 기분 좋은 느낌이 나는 단어는 아니지요. 또한 일반인들이 자주 접하는 곳도 아니고 가급적이면 가고 싶지 않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슬아슬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겁도 없이 행동한 나 자신과 군대 끗발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그런 곳에 가지 않도록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것이 중요한 일임을 깨닫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지구별에 경험하러 왔다고는 하지만 그런 경험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좋은 경험만 원 없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도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수두룩한데 말이지요.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신비스러움임을 알아갑니다.
나는 지금 새로운 경험 중입니다. 이 또한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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