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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생활에서의 경험

유격훈련

유격훈련

 부모님 덕으로 고향에서 남들보다 편안하게 군대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군대 생활하면서 남들이 당한다는 별다른 구타행위도 받지 않았습니다. 보통 저 같은 자충병들에게는 선임들이 잘해주지는 못해도 구타 같은 행위는 잘하지 않기도 하지요. 그런 연고로 한 밤중에 전체 집합이 있더라도 가끔 열외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부터 사령관의 지침으로 구타금지가 강력하게 시달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불시에 수시로 검열이 나오기도 했고 소원수리도 받고 그랬습니다.

 

 신병훈련이 끝나고 자대에 배치되면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유격훈련을 일주일 정도 받아야 합니다. 저도 훈련이 끝나고 자대에 배치받자마자 유격훈련을 호되게 받았습니다. TV에서 연예인들의 병영 체험 프로그램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힘든 과정이 많이 있습니다. 눈물, 콧물 흘리는 화생방에서부터 최고의 공포심을 유발한다는 높이에서의 공수 낙하 훈련 등 두 번 다시 받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고된 훈련입니다. 다행히 그다음 해에는 훈련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재수 없게도 제대를 일 개월 정도 남겨놓고 유격훈련을 받으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정말로 가기 싫었습니다. 내가 가기 싫다고 해서 안 가도 되는 것이 아니었지만, 정말로 제대를 얼마 남겨놓지 않고 혹독한 훈련받을 것을 생각하니 끔찍했습니다.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제대가 가까워진 말년이 되면 군기가 좀 헐렁한 시절이거든요. 그런데 유격훈련을 받으라고 하니 어느 누가 선뜻 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명령이 났으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속된 말로 중대장에게 찍혔는지 모르는 일입니다. 별다른 대안 없이, 소가 도살장에 끌려 들어가는 심정으로 배낭을 꾸렸습니다. 제가 선임이라서 부대원 8명을 인솔하여 유격훈련장에 일요일 저녁 지정된 시간까지 입교해야만 합니다. 정말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주번 사관에게 신고를 하고 부대 정문을 나서면서 이러한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만약에 내가 훈련장에 입교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전에 유격훈련받을 때 보니깐 입교하지 않은 사람은 유격장에서는 소속 부대에 통보만 하고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돌발행동을 했습니다. 설마, '말년 병장에게 심한 조치는 하지 않겠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바로 아래 선임병에게 대신 인솔하여 입교하라고 하고 전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런 행동을 취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무모하기 짝이 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입니다. 상관의 명령을 위반하는, 한마디로 탈영이나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는 거기까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제대 말년에 유격훈련을 보냈다는 서운함과 어떻게 해서든지 힘든 유격훈련을 받지 않겠다는 생각만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밤늦게 중대본부 선임하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왜 유격장에 입교하지 않았느냐는 가벼운 질책과 함께 내일 아침에 부대로 들어오라는 전화였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일주일 동안의 훈련 기간 동안 집에 있다가 유격훈련이 끝나는 날 부대로 복귀할 생각이었거든요. 무거운 발걸음으로 아침에 부대로 가는 통근버스를 타고 귀대했고 중대장에게 호출되었습니다.

 중대장님은 나를 보자마자 귀 싸대기 한 대를 때리고 나서 상의 전부를 탈의시켰습니다.. 그리곤 신문지 가운데에 구멍을 내어 머리만 내놓은 모습으로 만들었습니다. 샌드위치맨과 같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앞, 뒤로 나는 임의로 유격훈련을 기피한 놈입니다라는 글씨를 써놓았습니다. 그런 상태로 연대본부 각 참모부를 순회시키면서 창피를 당하게 했습니다.

 

 중대장님에게 호출되었을 때는 무거운 기합과 체벌을 각오하고 갔었는데, 그 정도는 즐거운 마음으로 참을 수 있었습니다. 싱겁게 저의 무모한 행동은 그렇게 함으로써 마무리되었습니다.. 아마도 제대 말년이라고 특별히 배려해준 것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나저나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선임 병장이 상관의 명령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한 것은 있을 수 없는 군기 문란 행동입니다. 그 책임을 물어 감방에서 근신해야 마땅한 일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중한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일주일간을 출퇴근하면서 군 생활을 하였습니다.

 

 유격훈련 명령이 나있는 기간 동안 저의 일보가 소속 부대에서는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매일 점호를 받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어서 무모하게 출퇴근을 한 것입니다. 정말로 겁 대가리가 하나도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입니다. 어디서 그런 무모함이 나왔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것만 제외하고는 제대 신고를 하고 부대 정문을 나설 때까지 맡은 바 업무를 충실히 해왔다고 자신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한 달 후에 제대할 병사에게 유격훈련을 시킨다는 것은 낭비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군 전력 증강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습니까? 금방 나 갈 병력인데 말이지요. 아마도 그 당시 중대장이나 중대 서무에게 밉게 보였나 봅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해가 되지를 않거든요. 졸병 때는 멋모르고 했는데, 두 번 다시 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었거든요.

 유격 훈련을 받을 때 자세를 잘 취하고 성실하게 하는 올빼미(유격 훈련받는 병사)에게는 빨간 모자 쓴 조교가 가끔 열외도 시켜주더라고요. 저는 운동신경도 있고 그래서 여러 코스별 훈련을 잘할 수 있었고, 또한 요령 피우지 않고 열심히 FM적으로 했거든요. 그런데 저보다 형편없게 보이는 올빼미에게 자꾸 열외를 시키더라고요. 그때마다 ‘이건 뭐지?’라는 생각도 들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올빼미였던 것이더라고요.

 

그래도 힘은 들었지만 그런 훈련을 받은 경험이 사회에 나와서 언젠가 필요할 때가 생기더라고요. 당시에는 싫었지만 억지라도 한번 해본 것하고, 이리저리 요령 피우며 한 번도 안 한 것 하고는 당연히 차이가 나기 마련입니다.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신비스러움입니다.

나는 지금 새로운 경험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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