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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은 것들

‘잘’하려고만 하지 말자

하려고만 하지 말자

‘잘하려고 하지 말라니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반문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행복하게 잘 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재미있고 행복한 삶을 추구합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생각하고 있는 보편적인 소망이라고 생각됩니다..

 

잘하고 싶고, 잘 먹고 싶고, 잘 입고 싶고, 잘 살고 싶어 합니다. 남들보다 잘 살기 위해서 불철주야 물불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합니다. 생존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상대방에 대해서는 생각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자기 일에 몰두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없습니다. 오로지 자기 자신이 정한 기준에 의거하여 판단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면서 남과 비교하여 조금이라고 처진다고 생각하면 불안하기 시작합니다. 잘 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욕심에 욕심을 더하는 것이지요.

 

과 비교하는 것이 모든 불행의 시초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도 카인이 자기 형과 비교하여 처진다고 생각하니 살인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모든 것은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는데서 나타나는 비극적인 결과입니다. 내 남편을, 내 아내를, 내 자식들을 남들과 비교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남들과 비교하는데서 욕심이 쌓인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자식들끼리 비교하는데서 불화가 시작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상대방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줄도 모르면서 스트레스를 주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비교당하는 것 때문에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마음의 짐이 되는 것이지요. 어쩌면 그 말 때문에 평생 트라우마로 가지고 가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면으로 보면 인류가 발전하려면 서로 비교 경쟁을 통해서 더 나아지려는 행동이 있어야겠지만, 비생산적인 비교는 불평·불만만 쌓이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사실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되고 있습니다. 건전한 라이벌은 인류발전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윈 하는 라이벌 일 때만 그렇습니다. ‘너 죽고 나 살자라는 식으로 처신하면 공멸하는 지름길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요사이는 적과도 손잡고 나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요사이 국제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한스컨설팅의 한근태 대표는 일생에 한 번은 고수를 만나라라는 책에서 고수는 경쟁을 통해 탄생한다. 혼자서 100미터를 달리면 신기록을 세우기 어렵다. 같이 뛰기 때문에 더 잘 뛴다.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라이벌이 있어야 한다. 천적도 필요하다.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쓰다 보니 고수가 되는 것이다. 싱싱한 생선을 운반하기 위해 수족관에는 천적을 같이 넣어 주어 항상 긴장하고 움직이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예전 모 TV 개그프로에서 한 개그맨이 일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하면서 괴로워하는 모습이 연출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사회현상은 일등을 하지 못하면 처진다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합니다. 그래서 모두들 잘하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일등을 하지 못하면 손해 본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손해라고 생각하는 것도 모두 자기 기준에 의해 정해 놓은 것이지만 말입니다. 친구와 동료와 이웃과 비교하기 시작하면서 불행은 시작됩니다. 형제들끼리 비교하는 말로 인해 상처를 받고 괴로워하고 괜히 미워하기도 하며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예전보다 많은 부분에서 개선이 되었다고 생각되지만,, 우리 모두는 일류병에 걸려 있는지도 모릅니다. 모두들 일류대학, 일류회사에 들어가기 위해서 경쟁이 치열합니다. 잘하려고 하지만 말고 그냥 하면 되는데, 모두들 이라는 단어 하나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나 봅니다. 잘해야 한다는 마음에 잘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하지도 못하고 포기하기도 합니다.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잘하려는 것이 아니라 즐겁게 그냥 하면서 그 과정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일등을 하지 않아도 행복한 세상이지요. 자기가 일등만 하려고 하고 남을 경쟁자로만 보는 사람은 행복을 찾기는 요원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한 사람들은 남과 함께 협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일등만 하려고 애쓰지 말고, 죽은 사람 바로 앞에만 서라. 그리고 이 순간을 즐겨라 ‘라고 최재천 교수가 한 말이 생각이 납니다. 잘살고, 잘해서 일등만 하려 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서 행복을 찾으라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새겨들어야 할 말입니다. 우리 삶 속에서 여유를 찾자는 얘기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경제발전의 단계에서 여유를 찾을 틈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이제는 여기저기서 여유를 찾으면서 천천히 가는 멋도 즐기면서 가자고 합니다. 앞만 보면서 가지 말고 천천히 여유 있게 가면서 주위의 경관도 즐기면서 그렇게 가면 삶이 더 즐거우리라 확신합니다.

 

우리는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너무 사로잡혀 있는지 모릅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성공 관련 서적과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성공하지 못하면 이 사회에서 낙오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성공 노이로제에 걸린 상태입니다. 시인은 노래합니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고 말입니다. 여유가 있을 때 보지 못하던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성공의 기준도 모호합니다. 각자 기준이 틀립니다. 그런데 그저 돈 많이 벌고, 좋은 집, 좋은 차 타고 다니면 성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독서토론을 시작할 때 제일 처음에 선정하는 책이 있습니다. 책을 잘 읽지 않던 사람들도 이 책을 보며 그냥 쉽게 읽어갑니다. 트리나 폴리스가 지은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얇은 책으로 그림이 곁들어 있어 읽는데 아무런 부담이 없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한 과정을 그림 동화식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전 세계에 700만 부 이상 팔린 책입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볼 수 있습니다. 나는 애벌레인지, 나비인지를 알아차리게 합니다. 또한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나비가 된 후에는 누구에게 희망을 주는 나비가 되고 싶은지 생각하게도 합니다.

 

통상적으로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확률은 3% 정도라고 합니다. 많은 애벌레들은 나비가 되는 방법을 알지도 못합니다. 그냥 애벌레로 살다가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들끼리 치고받는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피 튀기는 경쟁을 해야만 합니다. 남들이 다 그렇게 하니 자기도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승리한 애벌레가 쟁취한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허상일 뿐입니다. 그것을 위해 이렇게 피 터지게 살아왔는지 생각하면 허망하기 이를 데 없을 것입니다. 또한 쟁취한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항상 노심초사해야만 하고 단 일초라도 한 눈 팔 겨를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하염없이 아래로 아래로 추락할 뿐입니다. 혹시 우리네 삶도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뒤돌아 보아야 합니다..

자유로운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번데기라는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번데기라는 과정은 자신을 수련하고 집중해서 어느 한 가지에 몰입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고독하고 괴로운 자신과 싸워야 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두렵고 험난한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자유로운 나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빛나는 승리를 쟁취한 애벌레 일지라도 단지 애벌레 일뿐입니다.

 

현실에 눈이 트인 일부 지각 있는 애벌레들이 나비가 되기 위해 번데기가 되는 도전을 감행합니다. 번데기 과정에 도전한다고 해서 다 나비가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일부는 그 과정에서 도태되고 생명을 잃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하는 필수과정입니다.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을 거친 애벌레가 진정 자유로운 나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단지 두려움 때문에 주저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머리로는 잘 알고 있는데 손, 발이 움직여주지 않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내일 미루고 있다가 시기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 지구별에 경험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실수할까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잘할 수 있을 때까지 마냥 기다리기만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 안에 무엇이고 간에 부딪치고 경험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이 지구별을 떠날 때 아쉬움 없이 편안하게 갈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10년 가까이 주유소 운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항상 마음속에 새겨두고 저를 업 시킬 수 있게끔 해주는 말이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저를 구원해 주는 말, ‘나는 지금 새로운 경험 중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잘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지금 새로운 경험 중이다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나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잘하려고 하지만 말고 새로운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도전하자는 얘기입니다.

힘든 번데기 과정을 잘 거쳐서 나비가 된 사람은 어떠한 일을 하여야 할까요?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취득한 자리를 이제는 자기만을 위해서 사용해야 할까요? 어느 정도는 앞으로의 도약을 위한 충전기간도 필요하겠지요. 자유스러운 나비가 되었다고 그저 자신만 편안하게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비가 되어서 할 일이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나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꽃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아직도 애벌레 상태로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을 하여야만 합니다. 그저 자기는 자유롭게 되었다고 하면서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이기적인 나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 사회는 그러한 분위기 하고는 좀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위 있는 사람들이 더 한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막강한 힘을 활용하여 더 많은 부와 명예를 독차지하기 위해서 눈이 벌건 사람들을 봅니다. 불법도 서슴지 않고 저지릅니다. 없는 사람들들 착취하기도 하고 업신여기기도 합니다. 그러한 상황이다 보니 그런 나비를 경멸하고 시기하기만 합니다. 그런 나비만 경멸하고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나비들을 싸잡아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나비가 되어서도 존경받을 만한 짓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당연한 얘기입니다.

 

업신여기고 손해 보지 않기 위해서, 내 자식들에게만큼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라고 다그칩니다. 남들이 하는데 안 하면 나만 처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럴수록 더 공부 잘하라고 다그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자기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데 주위에서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하는 행위를 정당화시킵니다.. 잘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공부 잘해야 하고, 일류대학 들어가야 하고, 돈 잘 벌어야 합니다. 학생들은 학업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안절부절못합니다.. 최악의 경우는 그 고통과 두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생명을 버리는 일까지 서슴지 않고 저지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잘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과가 좋아야 하고 너무 잘하려는 강박관념이 우리를 힘들게 할 때가 많습니다.

 

제가 지도하고 있는 독서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주부님이 가끔 우리 애가 공부를 잘 못해서 속상해 죽겠어요.’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거기에서 잘을 빼보시지요.’ 그랬더니 금방 반응이 옵니다. ‘그러네요, 잘을 빼니 편안해지네요.’ 그러면서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합니다. 화사하니 보기 좋습니다. , 그렇지요. 우리는 이라는 한마디의 말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오고 있는지 모릅니다. ‘잘’이라는 것만 없어도 이렇게 마음이 편안한데 말이지요. 그냥 살면 되고, 그냥 먹으면 되고, 그냥 입으면 되는데 말이지요. 잘하려고만 하지 말고 그냥 즐기면서 합시다.

 

저도 몇 년 전에 제 책을 출간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잘’ 쓰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쓰기 시작한 지가 1년이 훨씬 지나갔지만 마음먹은 대로 쓰여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쓰다가 중단하다가 그러면서 미적거리기만 하고 있는 저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잘 쓰지 말고 그냥 내 이야기를 진솔하게 쓰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한번 쓰기 시작하면 3~4시간 계속할 수 있었고 수월하게 쓰여집니다. 머릿속에서 써야 할 것들이 새록새록 생겨나기 시작합니다이라는 단어가 저의 생각을 움켜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냥 하면 되는 것인데, 욕심이 앞을 가린다고 해야 할까요?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버드대 긍정심리학 교수인 탈 벤 샤하르(Tal Ben-Shahar)는 그의 저서 완벽의 추구에서 우리가 행복하지 못한 원인을 완벽주의에 대한 강요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완벽이란 불가능한 환상인데도, 그걸 달성하지 못하는 좌절감이 우리를 생의 끝으로 내몬다는 것입니다. 하다가 실패하면 다시 하면 된다는 느긋한 마음으로 시작하면 한결 편안한 가운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편안하게 생각하라고 충고해준다고 해서 고쳐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타고 난 성격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상에서 적어도 3주 동안 꾸준히 의식적으로 연습해야 합니다.

 

누구나 타고난 재능이 다릅니다. 그 타고난 재능을 충분히 활용하여 즐기면서 정진하다 보면 훨씬 더 수월하게 자유스러운 나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재능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줄 수 있는 그런 나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베풀고 나누어 줄 때 찾아오는 행복감을 주체하지 못해서 어쩔 줄 모르는 그런 행복 나비들이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최근 유엔에서 발표한 행복지수 일등인 나라가, 우리보다 국토도 적고 환경도 열악한 북유럽의 조그만 나라인 덴마크라고 합니다. 학생이건 주부건 직장인 이건 어느 누구를 붙잡고 물어보아도 한결같이 행복하다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자기들은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국민들이라고 합니다. 부럽기도 합니다. 우리는 언제 행복한 국민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봅니다.

 

국민 행복지수가 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우리나라를 어떻게 하면 행복한 나라로 만들 수 있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그 구심점을 찾아서 모두 힘을 합쳐 그것만큼은 잘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금의 코로나 사태도 잘 극복해야 합니다. 남북통일도 잘 해야 합니다. 사회 곳곳에서 협력도 잘 해야 합니다. 나눔과 봉사도 잘 해야 합니다. 모두가 평등하고 신뢰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진정으로 잘 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해보아야만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행복한 나라로 가기 위한 초석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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