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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생활 할 때 경험

해외파견 합숙훈련

해외파견 합숙훈련

20여 년 동안 회사에 다니면서 기술 제휴처에 연수차 해외에 나간 적이 두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지게차 기술 제휴처인 일본으로 한 달 정도 갔었고, 두 번째는 유압 크레인을 제작하는 미국의 GROVE사에 한 달 정도 기술연수를 갔었습니다. 그 후에는 출장 형식으로 일주일 정도 일본이나 중국을 다녀온 적이 있었지만 해외에 장기간 파견을 간 적은 없었습니다.

 

그 당시 그룹 회장이신 김우중 회장님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고 외치시며 일 년의 2/3는 해외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런 회장님의 지침에 의거 이태리에 있는 국영 중공업회사를 인수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현지에서 인수 회담이 진행 중이면서, 국내에서는 인수한 회사를 운영하기 위한 팀장급 인원을 선발하여 합숙훈련을 병행하기로 하였습니다. 각 본부에서 차출된 20여 명의 해외 파견 팀에 선발이 되어 용인 연수원에서 장기간의 합숙훈련을 통한 실무교육을 받았습니다. IMF사태가 발발하기 얼마 전이었습니다.

모든 교육은 영어로 진행되었고, 일과 시간 중에는 영어만 사용해야 했습니다. 규칙을 지키지 않고 성적이 나쁘면 해외 파견에서 제외한다는 협박도 있었습니다.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매주 토익 테스트를 하여 그 성적이 공개되었습니다. 영어에 대한 실력이 출중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영어를 사용한지도 오래되어서 모든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왔습니다. 일과 후에도 숙소에서 영어 공부를 하지 않으면 최하위로 밀려나갈 수밖에 없을 정도였고, 동료들과 자유스러운 시간을 만끽한다는 것은 꿈에 불과했습니다.

 

그 외에 컴퓨터 타이핑 교육과 회계 실무 및 무역 전반에 관한 실무교육이 이어졌습니다. 그때까지 겨우 독수리 타법으로 타이핑하는 실력 이었는데, 열 손가락으로 타이핑 및 각종 문서 작성을 위한 실습은 불편하고 어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컴퓨터 자판에 있는 한글과 영어의 위치를 머릿속에 암기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정해진 시간 내에 완료하고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굳을 대로 굳어있는 상태에서 젊은 친구들과 같이 호흡을 맞추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차라리 탈락하여 해외에 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습니다.

 

그렇게 스트레스가 막중하게 짓눌리는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교육 테스트 결과는 바닥권을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갑자기 뒷골이 심하게 댕기기 시작했습니다. 영어 회화 시간이 되면 상태가 더 심해졌습니다. 숙소에 가서도 영어 책을 펼치기만 하면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공부하기 싫어 일부러 아픈 척하는 꾀병 같은 현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이었습니다. 영어 책만 펼치면 머리가 지끈거렸습니다.

 

쉬는 시간에 보다 못한 동료가 편하게 생각하라며 담배를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담배를 2년 넘게 끊었던 상태인데, 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권하는 담배를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한 모금을 빨자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몇 번 실패 후 간신히 끊었는데, 공든 탑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견디다 못한 어느 날, 조퇴를 하고 인천 길병원에 갔습니다. 신경정신과에 접수하고 진찰을 받았습니다. 담당 의사는 제 설명을 듣고 나서, ‘김영삼 대통령의 세계화가 사람들을 여러 가지로 피곤하게 한다.’라고 하면서 편하게 지내라는 지침과 함께 처방을 해 주었습니다. 다음 날부터는 병원에서 진찰 받은 결과를 교육 담당자에게 전달하고 나를 그냥 놓아두라고 얘기했습니다. 토익 테스트도 받지 않았습니다. 성적이야 어떻게 되든 마음 편하게 먹고 지내기로 했습니다.

 

그러고 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IMF사태가 터졌고, 전반적으로 해외사업에 대한 재검토가 들어갔습니다. 당연히 3개월 계획이었던 합숙 교육은 반절도 채우지 못하고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어 계획대로 진행이 되었다면 저도 이태리로 파견 나가서 근무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 성적 미달로 합류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해외 파견 가지 못하고 다시 원 소속으로 원대 복귀할 수는 있지만, 성적 미달로 떨어졌다면 동료 직원들이나 상급자들에게 좋지 못한 인상으로 인사고과에 불리함을 감수해야 했을 겁니다. 실제로, 중단되어 복귀하고 보니 벌써 보직결정이 완료되었더라고요. 별수 없이 본부장님의 배려로 별도의 팀을 구성하여 근무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해당 사업부의 존폐여부가 거론되는 상황이 벌어졌고, 여러 가지 이유로 1999년 말일 자로 20년간 정들었던 직장을 명예퇴직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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