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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말의 거센 민주화 운동이 거센 파도처럼 몰아치면서 각 사업체에서 강성 노조의 파업이 지속되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회사에도 매년 임금 인상을 위한 파업이 일어났고 그에 따라 임금의 지출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회사에서는 그런 느슨해진 근무 분위기를 쇄신하고 현장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 90년대 초부터 전사적인 개선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전사적으로 개선운동을 총괄 진행할 신규 조직을 조직하고 각 본부별로는 공장개선팀을 구성했습니다. 그러면서 전 직원이 운동장에 모여 공장혁신운동을 시작하는 선포식을 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각오를 다지는 선언문을 전사 대표로 낭독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운동의 명칭을 ‘크린 베스트(clean best) 운동’이라 정하고 BEST공장 추진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에 있는 개선 활동을 전문적으로 추진하는 컨설턴트를 초빙하였습니다. 그 컨설턴트를 중심으로 각 공장개선팀이 주축이 되어 전사적인 공장개선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공장을 순회하면서 문제점과 개선 방향에 대한 지도를 합니다. 다음 달에는 한 달 동안의 개선된 결과를 모든 경영진을 모신 자리에서 강평을 하고 본부별로 추진 실적에 대한 활동 점수를 매겼습니다. 자연히 본부별로 경쟁이 되었고 각 본부장들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개선이라든가 혁신적인 활동은 리더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특히 최고 경영자가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 진행과정과 결과가 달라집니다. 리더의 강한 개선의지가 있을 때 종업원들의 참여가 가능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만 거창하게 떠벌려 놓고 용두사미 격이 되어버리기 십상입니다. 평상시에 하지 않던 방식으로 바꾸는 것인데 최고 경영자가 관심을 가지고 관리를 하지 않으면 그 개혁은 보여주기식이 되고 맙니다. 실무 추진자 혼자서만 애만 태우다가 흐지부지되기 일쑤입니다. 실무자가 신바람이 나지를 않지요.
과거 정부에서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사항이 있으면 그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을 요란하게 떠들어댔습니다. ‘범죄와 전쟁’ 및 ‘학교 폭력과의 전쟁’ 등 거창하게 시작은 했지만 만족한 결과를 도출했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척결될 때가지 리더가 끝까지 관심을 가지고 시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만 번드르르하고 알맹이도 없고 언제 끝났는지도 모르고 결과가 어떠했는지도 모르는 채 흐지부지 되고 맙니다. 그 만큼 리더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PDCA에 입각한 피드백이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속한 본부에서도 제가 팀장이 되어 본부장님의 지대한 관심 속에 개선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베스트 공장 추진의 첫 단계는 5S 운동(정리, 정돈, 청소, 청결, 습관화)의 시행입니다. 5S운동의 처음에 시행하는 것이 현장구석구석에 산재에 있는 필요 없는 자재나 부품 및 설비들을 찾아내어 폐기나 재활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다음 행동에 들어갑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정돈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버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쓸 수 있을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의 손 타지 않는 구석에 또는 캐비넷 깊숙이 잘 보관들을 합니다. 추진팀이 주축이 되어 그런 것들을 찾아내고 재활용 여부를 판단해서 처분하는 것입니다. 공장에서뿐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첫 번째 작업부터 컨설턴트와 함께 추진해 나가고 그 추진 결과를 매월 관련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강평을 하고 본부별로 평가를 하는 것입니다.
본부장은 팀장인 저에게 매주 5S 상태를 조별로 점검하여 그 결과를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사장님 앞에서 추진 결과가 발표되고 각 본부별로 경쟁을 하는데 그냥 맡겨두고 할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 점검 결과에 따라 ‘워스트 5’에 속한 조장들은 본부장님에게 꾸중과 질타를 당하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제가 현장 점검을 나갈 때는 각 조장들이 비상사태에 돌입합니다. 혹시 지적이 많이 되어 본부장에게 질책을 당하는 경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때 저는, 소위 말하는 ‘끗발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 덕에 매월 컨설턴트가 평가하는 자리에서 항상 전사 1등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덩달아 팀장인 저도 어깨가 으슥해지는 경험을 했었고, 매월 컨설턴트가 기다려질 수밖에 없었으며 자연스럽게 친분도 많이 생겼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본부장님은 연말 인사고과에서 저에게 높은 점수를 주기도 했습니다. 제 회사생활의 황금기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타사 선진 기업체를 방문하기 위해 관련자들과 일본 출장을 거서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도 가졌었습니다. 그렇게 2년 정도 진행되다가 종료가 되었고 저는 신규 사업을 추진하는 팀으로 보직을 옮겼습니다.
그렇게 회사에서 개선 활동을 추진하다 보니 집에 돌아오면 그 버릇이 나옵니다. 5S에 관한 입장에서 집안을 보니 개선해야 할 것이 여기 저기 보입니다. 그래서 참지 못하고 제가 나서서 처리하면 아내는 왜 함부로 처리하느냐고 불만을 터뜨리곤 합니다. 내 눈에는 거슬리는 것 투성인데 어쩌란 말입니까? 그 일로 가끔 언쟁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집안의 주인은 아내인 거가 맞는 거 같습니다. 제가 5S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일이었는데 괜히 가정의 불씨만 남겨놓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 집의 ‘5S’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