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분규
제가 생산과장으로 근무하는 시점에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면서 민주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연일 각 기업체에서 노조를 중심으로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억눌려있던 현장 근로자들이 노조를 구성하고 임금인상을 기치로 걸고 파업을 강행했습니다. 어용으로 지탄을 받는 노조들이 철퇴를 맞았습니다. 저희 회사도 그런 물결을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본관 앞 잔디구장에 모여 구호를 외치며 파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 농성하는 장소에서 선두로 나서서 파업을 주장하는 강경파 조합원들이 어느 본부 소속이냐에 따라 담당 부서장은 물론 과장들은 비상이 걸립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 강경파 사원을 설득하여 조용히 있도록 해야만 했습니다. 파업은 참여하더라도 앞장서서 선동하는 사원이 소속된 부서는 담당 부서장이 조치를 취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공장 문이 닫히고 정상적인 근무를 할 수 없어도 관리자급은 담을 넘어 사무실에 모여 대책을 숙의했습니다.
그 날 집회 상황을 분석해서 설득해야 할 대상을 선정합니다. 그리고 저녁 때 직접 만나서 자중하여 주기를 호소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노사분규의 쟁점은 임금인상이었습니다. 지금은 현장에 근무는 기술직 사원과 관리직 사원들의 임금이 별 차이가 없었지만 그 당시는 상당한 차이가 났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임금인상을 위한 파업을 자제하라고 설득하는 것이 저로서는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았습니다. 내가 임금을 더 많이 받고 있는 입장에서, 조금만 받으라고 설득한다는 것이 낮 간지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상사의 지시를 수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집에도 찾아갔습니다. 만나서 할 수 있는 방법은 내 얼굴 봐서 자제해달라는 설득이 아니라 하소연이었습니다. 같이 술자리에 어울려서 격의 없는 모습을 보이려고 연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현장을 관리하는 생산부서의 관리자로서의 불편한 진실입니다.
파업이 종료되고 나서도 수시로 강경하게 선동하는 자를 사무실로 불러서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관리하는 현장 조직이 5개조였는데, 일과 후에는 조별 회식에 참여하여 평소부터 관계 맺기를 충실히 하는 것입니다. 특히 일요일에 현장 사원이 멀리 시골에서 경조사가 있을 때는 아침부터 대절 버스에 동행하면서 격의 없는 관계를 유지하여야 합니다. 직접 생산 활동을 위한 현장관리보다는 노사관리를 위한 활동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런 노조의 활동 결과로 현장의 임금이 사무실 근무하는 직원들보다 높은 사람이 더 많은 상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쟁점이 임금인상보다는 다른 복지 분야에 치중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현장 관리자만이 노력한다고 해서 분규가 없어지는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만큼 노조의 입김이 막강해진 상황입니다.
노사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해가는 자세가 절실합니다. 각자의 관점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갭이 생길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서로 그 갭을 줄여나가는 열린 마음의 자세가 절실한 때입니다. 갈등을 슬기롭게 해소해나가는 삶의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투명한 경영과 과실을 공유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특히 경영자 측에서 전향적인 자세로 노사협의에 임해야 합니다. 그동안 근로자의 희생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경영자 측이 합리적으로 양보하고 수긍하는 자세를 보여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소통과 이해의 부족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 때문에 연간 소모비용이 막대하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그 갈등과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 시대적 상황입니다.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과거시대처럼 무조건 지시에 의하여 행동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같이 고민하고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으로 합리적인 대화를 지속해야 합니다. 여지사지의 심정으로 내가 상대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파자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 방법으로는 이 갈등은 풀어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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