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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은 것들

남을 '돕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

남을 '돕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

 ‘봉사하고 싶다, 남을 돕고 싶다는 생각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소망인지 모른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모든 것을 거느리라'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들을 '보살피는 마음'이 저변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왜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하느냐고 한다면, 같은 인간으로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고 부정할 수 없기에 도와야 하겠지요. 어려운 사람이기 때문에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어려운 이웃을 보면 도와야 한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

내가 조금만 여유가 있으면, 내가 나이 들어서는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우리 주위에는 자기 자신도 형편이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남을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한편으로는 어떻게 그러한 마음을 품게 되었는지 의아해할 때가 종종 있지만 대단한 사람들이다.

우리의 마음 속에는 측은지심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봉사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행복이 커진다고 한다.

1년에 100시간대에 이르면 최고조에 오른다.

그래서 자원봉사도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자기를 희생하면서 즐기면서 한다고 한다.

나 또한 사명선언서에 '내가 배우고 익힌 것들을 나누어 주는 삶을 살겠다'라고 적어 놨다.

돕는다는 것이 꼭 물질적인 형태가 아니더라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재능으로 남을 도와주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옛말에 부모님들이 배워서 남 주냐?”라고 하시면서 공부하라고 채근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배워서 남 주자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자기 자신만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사회를 위한 기여를 목적으로 배움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미국의 어느 고등학교에 있는 교훈에 배워서 남주자라는 교훈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특히 은퇴 후에는 후배 양성을 위하여 자신의 노하우를 나누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힘들게 배운 것인데 어떻게 남에게 주느냐고 움켜쥐지 말고 베풀어야 한다.

그래야 존경받고 대우받는 노후가 된다. 움켜쥐고만 있으면 누구처럼 추하게 늙어만 간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부와 권력과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특히 고위층에 요구된다 

미국의 상류사회에서는 그러한 생각들이 폭넓게 자리 잡고 있는 공통적인 의식인 것 같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를 살펴보면 배운 사람들이 부정을 저지르고 자기들만을 위한 폭리와 악행을 일삼고 있는 내용들을 매스컴을 통하여 심심치 않게 듣고 있다.

대통령과 그 일가친척들도, 또한 소위 권력층이라는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의 작태가 우리의 기대와 동떨어져 있는 것을 보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맞이하여 국민들의 자발적인 기부와 봉사활동이 줄을 잇고 있다.

크고 작은 기부행위도 이어지고 있다. 각박한 사태에 한 줄기 빛이다. 국가적 어려움을 같이 나누고 함께 극복하자는 암묵적인

동참이다. 

도움을 받는 것보다 도움을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한다. 

 

 도움에도 적절한 시기와 방법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도울 땐 먼저 상대방이 도움을 요청해야 하고, 그가 원하는 시기와 방식에 맞추어야 한다.

상대가 원치 않는데 내 기분과 의리를 앞세워 도움을 자청하고 있진 않은지를 잘 살펴야 한다.

'줄탁동시'라고 한다. 필요 없는 일을 오지랖 넓게 해 준다면 도리어 해를 끼치는 행위임을 통찰해야만 한다.

 

 누구든 선한 행위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있다.

그러나 도움을 줄 때는 인정 욕구를 버려야 한다. 그래야 더 존경받고 빛을 발한다.

사람들은 거액의 기부자를 존경하지만 익명의 기부자를 더욱 존경한다.

연말연시에 '얼굴 없는 천사'라는 제목으로 10년 넘게 기부를 하고 있는 기사를 접할 때 우리를 더 훈훈하게 만들어준다.

 

 도움을 받는 사람의 자존심을 해치지 않는 배려도 중요하다.

언젠가 읽었던 책에 있던 내용이다.

「만원 밖에 없는 가난한 미혼모가 분유를 사러 왔다. 가게 주인은 한 통에 2만 원이라고 말한다. 힘없이 돌아서는 아이 엄마 뒤에서 주인은 조용히 분유통을 떨어뜨린다. "통이 찌그러진 분유는 반값입니다."」

가게 주인의 배려에 박수를 보낸다.

특히 친한 친구에게 도움을 줄 때는 친구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 도와주는 방법에 대하여 배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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