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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경험들

촛불집회

촛불집회

 저는 1972년도에 학교에 입학해서 2학년까지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74년도부터 32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77년도에 3학년에 복학을 했습니다. 저의 대학시절에는 박정희 정권의 유신 독재 타도에 대한 시위가 연례행사처럼 자주 있었습니다. 아마 매 학기마다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창피한 일인지 비겁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전 학교 다닐 때 민주화 투쟁을 위한 집회라든지 시위에 참여한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정치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저에게 있어서는 생소한 일입니다. 그만큼 정치적인 안목이라든가 소신이 미성숙했었고 정치에 무관심한 편이었습니다. 또한 학창 시절에 저한테 그런 집회에 참석하자라든가 운동권 활동을 하자고 권유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워낙 조용히 학교에 다니고 방과 후 활동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단지, 체육대회 행사가 있을 때 축구 선수로 출전해 달라는 요청을 제외하고는 말이지요.

 

 어느 날 학교에 도착하면 교문에 휴교를 안내하는 공지문을 봅니다. 쉰다는 것이 그냥 좋아서 돌아서거나 과 친구들과 학교 주변의 당구장에서 당구를 치던 기억만 납니다. 그리곤 다음 날 바로 시골로 내려가서 휴강의 맛을 즐기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내려가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남들처럼 청춘사업에 열심히 빠졌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시위 때의 무용담이라든가 최루탄 가스의 독한 냄새에 대한 추억도 없습니다. 그 당시 유신 독재 타도 투쟁에 열심히 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저를 보고 좀 밋밋한 사람이라고 탓할까요?

 

 80년도의 민주화 운동 때는 열심히 회사생활에 충실하기만 했습니다. 정치와는 무관심 속에서 지내왔습니다. 그랬던 제가 2016년 말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을 보고는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국의 대통령이 대통령답지 않은 처신을 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일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창피했습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전국적으로 자발적인 촛불집회가 열렸습니다. 거리 관계로 광화문 집회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전주에서 일어난 촛불집회에는 세 번 참석했습니다. 전주시내 객사 앞 도로에서 평화롭게 민주시민들의 분노가 표출되는 현장에 동참한 것입니다. 주최측에서 초와 피켓들도 나누어 주었고, 시민단체에서는 따뜻한 차도 제공해주었습니다. 심심치 않게 집회 현장에서 아는 분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사회자의 선창에 따라 열심히 구호도 외쳤습니다. 집회가 끝난 뒤에는 집행부의 인도로 시내 행진을 하면서 구호도 외쳤습니다. 남들은 서울까지 가서 광화문 집회에 참여하였다고 하는데, 끝나고 나니 광화문에 가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천에 올라와서는 작년 가을에 서초동에서 있었던 검찰개혁 촛불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지방에서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느껴보기 위해 혼자서 지하철을 타고 시간에 맞추어 참석했습니다. 서초역에 도착하니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집회 장소에 도착해 군중 속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옆에서는 반대 진영(태극기 부대)의 방해 집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화물차 위에 올라가서 마이크를 잡고 큰소리를 방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쪽에서는 개의치 않고 열심히 검찰개혁’, ‘조국수호라는 구호를 목아 터져라 외치고 박수를 치곤 하였습니다. 현 시국에 대한 검찰의 과도한 공권력 남용에 대한 항의 표시를 한 것입니다.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인산인해를 이룬 인파로 인해서 본부석이 어딘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방에서 있었던 촛불 집회하고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어느 정도 집회가 진행되는 중간에 일어났습니다. 멀리 인천까지 가야하는 관계로 현장을 벗어나 서초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처음에 왔을 때의 인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은 인원이 모였습니다. 주최 측에서 10만 명의 인원이 참여할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그보다는 몇 10배 초과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대단했습니다. 인증샷을 찍어 동창들의 단톡에 올렸습니다.

 

 꽉 들어찬 인파 사이를 헤치고 벗어나는 길은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차도와 인도는 물론 건물 사이사이마다 사람들로 들어차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평소 1~2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30분이 넘게 헤치고 나왔습니다. 어렵게 나오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참 흡족했습니다. 현 사태에 대해서 공감하고 개선되기를 바라는 국민들이 많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지하철 역사를 내려가는 계단에는 아직도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올라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였습니다. 그렇게 서울에서의 촛불집회 경험을 하였습니다.

 

 저는 근저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촛불집회에 대해서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른 어느 나라에서 일어났던 시민운동보다 질서 있고 차원이 다른 자발적인 행사라는 점입니다. 민중에 의한 중요한 혁명으로 프랑스 대혁명이 역사에 많이 회자되고 있지요. 그 혁명을 계기로 민주화 인권운동이 가속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혁명에서는 많은

저항이 있었고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었습니다. 사상자가 많이 생긴 유혈혁명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촛불혁명은 자발적이고 질서 있고 다친 사람 하나 없는 무혈혁명입니다.

 

 그 촛불의 힘으로 무능한 정권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찬사를 아끼지 않는 위대한 혁명을 시민들의 자발적인 촛불의 힘으로 완성시킨 것입니다. 그 촛불의 힘으로 태어난 정부에 대해서 세계는 경탄스런 모습으로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선출된 대통령에 대해서 세계는 무시를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단한 국민들 이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됩니다.

 

 그러나 아직도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심한 세력들에 대해서는 이해를 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나만 그러는 것일까요? 할 말은 많지만……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자제하겠습니다. 대안 없는 무조건 반대는 환영받을 수 없음은 자명합니다.

 그런데 이번 4.15 총선거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현 정부에게 힘을 실어 준 것입니다. 구태에 묶여 있는 집단들에게 뼈아픈 채찍을 가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감스러운 것은, 아직도 자기들이 왜 외면을 당했는지 알지도 모르고 계속적으로 똑같은 짓을 되풀이하는 모습들이 한심스럽다는 것입니다. 하루 빨리 건전한 보수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자기들만의 견고한 틀을 깨고 나와야 합니다. 안 그러면 또 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가지고 있는 기득권들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아직도 미련이 많은가 봅니다. 그러면 계속 그렇게 살아가야 합니다. 비워야 채워지는 단순한 원리를 모르는 인간들이 참 많습니다. 머리로 알기는 아는데, 실천이 안 되니 문제겠지요? 일보 전진 하기 위해서는 일보 후퇴해야 합니다. 화살을 멀리 보내려면 시위를 뒤로 세게 잡아당겨야 합니다. 그게 자연의 이치입니다.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나는 지금도 새로운 경험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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