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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날 때마다

한 밤중 감 떨어지는 소리

한 밤중 감 떨어지는 소리

 부모님들이 살고 계셨던 전주에는 아버님께서 전주에 안착하시면서 구입한 집이 있습니다. 시내 주택가 골목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자그마한 한옥입니다. 집장사가 지어서 분양한 새집입니다. 그 집에는 오래된 감나무와 모과나무가 한 그루씩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입니다. 새집으로 이사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 외삼촌께서 모과나무와 감나무 한 그루씩 사 오셨습니다.. 조그만 묘목을 화단 한쪽에 심었습니다. 그게 벌써 50년이 지났습니다. 매년 감도 풍성하게 열립니다. 가을에 붉게 익은 감을 따서 먹으면 맛이 그만입니다. 감이 익을 때면 어머님께서는 옆집에도 나누어 주십니다.

 

 그 감나무가 번성해서 앞집의 지붕 위를 넘어 무성하게 가지를 뻗었습니다. 모과나무도 마찬가지로 가을마다 탐스럽게 열려서 어머님께서는 차로 끓여 드시고 모과주도 담그셨습니다. 그런데 가을마다 탐스럽게 열매를 제공해 주는 감나무가 말썽을 피웁니다. 자기가 피우고 싶어서 피우는 말썽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인지도 모릅니다.

 

 별다르게 관리를 해주니 않아서 그런지 성장하는 과정에 저절로 떨어지는 감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앞집 지붕 위까지 무성하게 뻗어 난 감나무입니다. 저절로 떨어지는 감들이 앞집의 지붕위에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양철로 된 처마에 떨어질 때는 소리가 무척이나 요란합니다.

 다행히 모과나무는 앞집 담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피해가 덜하지만 감나무는 사정없이 시도 때도 없이 내리칩니다. 한 밤중에 들으면 저도 깜짝 놀랄 정도의 커다란 소리가 납니다. 조용한 한밤중에 나는 그 소리는 천둥 치는 것 같습니다. 앞집에 혼자 사는 노인 여자의 잠을 깨우는 것은 물론 깜짝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런 일이 계속되자 참다못한 앞집 노인 여자분이 우리 집에 와서 소란을 피웠다고 합니다. 시끄럽고 무서워 잠을 못 잔다고 어머님께 와서 화를 내며 삿대질을 하고 험한 소리를 했다는 것입니다. 익은 감을 앞집에도 나누어 주었으면 그렇게 하지는 않았겠지요. 근데 옆집은 주고 앞집은 그 대상에서 제외가 되었나 봅니다.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었습니다. 앞집 지붕까지 뻗어난 가지를 잘라주는 것이었지만 부모님 두 분만 사시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무 위로 올라가서 톱으로 잘라주어야 하는 데 연로한 분들이 할 일이 아닙니다. 적당한 날을 잡아서 아우와 둘이 작업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한참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앞집에 사시는 그 노인이 왔습니다.

 

 그러더니 그간의 불편했던 사항을 또다시 퍼부어 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불편하지 않게 해 드리려고 작업을 하고 있는데 마구잡이식으로 화를 내는 것입니다. 좀 참으면 해결되는데, 성질도 무척 급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자 나무에 올라가 힘들게 톱질을 하고 있던 아우도 참지를 못하고 같이 험한 소리를 하기 시작합니다. 전에 어머니에게 했던 험한 짓거리들이 연상되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항이 한동안 계속되었습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제가 한 마디 거들었습니다. 앞집 사람의 입장에서 공감하는 말로 조용조용히 말을 하면서 조그만 참으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죄송하다고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앞집 사람의 말이 금방 누그러들었고 잠시 후 본인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며 드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웃사촌이라고 하는데 이제는 옛말이 되었나 봅니다. 이웃 간에 어떤 문제가 있으면 서로 이야기하면 해결될 수 있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먼저 화부터 내면서 소리부터 지르고 봅니다. 소통할 줄 모르고 화를 다스릴 줄 모르는 것입니다. 먼저 상대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이해하면 소리치지 않아도 해결될 일인 것입니다.

 

 그렇게 화내면서 소리치고 나면 속이 시원할까요? 나중에 같은 골목에 사는데 오다가다 마주치면 서로 어색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나무를 자르고 나니 떨어질 감도 별로 없어졌습니다. 밤마다 천둥치는 것 같은 소리도 없어졌습니다. 실제로 가끔 골목에서 이웃집 여자를 만나면 상대가 먼저 얼굴을 피합니다. 제 얼굴 보기가 겸연쩍어졌나 봅니다..

 

 며칠 전에 전주에 가보니 몇 년 전에 자른 감나무에 다시 새 싹이 돋고 가지가 뻗어 감이 달리기 시작합니다. 다시 한번 험한 꼴 보기 전에 미리 잘라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두 번 다시 같은 문제가 발생하도록 방치한다는 것은 우매한 인간들이나 할 짓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만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보다 상대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내가 생각을 바꾸면 화날 일이 없습니다.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신비스러움입니다. 심호흡 한번 하고 나서 행동해도 늦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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