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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날 때마다

빛바랜 누런 편지

빛바랜 누런 편지

아버님께서 1년 넘게 누워빛바랜 누런 편지만 계시다가 2년 전에 91세를 일기로 돌아가셨습니다. 요양병원에 계실 때에 가끔 면회를 가도 거의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옅은 미소에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건강하실 때도 별로 말씀이 없으시던 분이었지만, 돌아가실 때까지 몇 년 동안은 아무런 말씀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말없이 누워만 계시다가 지구별 여행을 마치셨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유품을 정리하는 중에 빛바랜 누런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봉투를 보니 제가 40년 전에 보낸 편지였습니다.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여 편지를 읽어보았습니다. 그 당시 사귀고 있던 여자와의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쓴 장문의 편지였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하여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던 시절에 보낸 편지입니다.

 

인천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가끔 시골에 내려 갈 때 사귀고 있는 여자와의 결혼에 대한 말씀을 드렸었는데 별로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이셨거든요. 어머님께서는 장남의 결혼을 본인이 선택한 여자를 맏며느리로 삼고 싶으셨습니다. 그런데 별안간 알지도 못한 여자하고 결혼하겠다고 하니 선뜻 허락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편지지 8장에 달하는 장문의 편지를 보내어 저의 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거의 협박 비슷한 내용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허락을 안 해주시면 둘이서 그냥 도망쳐서라도 같이 살 거라는 식의 내용이었습니다. 좌우지간 그 편지를 받으시고 결혼 날짜를 잡자고 답신이 와서 한시름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이지요. 너무 빨리 백기를 드신 것에 조금 의아스럽기도 했었습니다.

 

그런 내용의 편지를 지금 읽어보니 유치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죄송스럽고 송구스러운 생각 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내가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당돌하다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철이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며느리로 인정해주고 사랑해주신 두 분께 감사한 마음과 죄송한 마음을 이제야 전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내가 이제 부모의 입장에서 그 당시 두 분의 마음을 읽어봅니다. 죄송합니다. 아버님.

 

빛바랜 누런 편지를 읽으면서, 어렵게 허락받은 새로운 삶이 죽을 때까지 연속될 수 있도록, 내가 선택한 여자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면서 살아가기를 지금도 다짐해봅니다. 두 분의 뜻대로 큰 며느리로서의 위치를 다할 수 있도록 다짐합니다.

 

전부다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같이 못살고 헤어지는 것보다, 서로 이해해가고 양보해가며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삶을 가꾸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함을 절실히 경험해보는 인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