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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날 때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나는 원래 이래’, ‘나는 이러 이러한 사람이다라고 규정되어 있는 것이 있을까?

자기의 정체성이라고 하면서 자기만의 틀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규정을 벗어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원리원칙을 고수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자기가 규정하고 있는 범위를 벗어나면 어딘가 모르게 불편해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로부터 앞뒤가 꽉 막혀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융통성이 없다고도 한다.

 

그런데 원래부터 이렇게 정해져 있는 것이 있을까? 원래 없었던 것이 한 번 하고, 두 번 해보고 계속하다보니 습관처럼 몸에 굳어버린 경우가 많다. 이제는 그게 자기의 틀이 되고 만다. 길들여진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곤 한다. 그 틀에서 벗어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완강하게 거부하는 것이다. 무슨 얘기를 해도 쇠기에 경 읽기형태가 되어버린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답답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요는 이러한 작태를 정작 본인은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자기가 그렇다는 것을 알아야 고치든가 말든가 할 수 있을 텐데 알지를 못하니, 오히려 남들이 이상하게 보일 뿐이다. 그러한 것들을 알려주면 여러 이유를 대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기에 급급하기만 한다. 그러한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좀 배웠다는 사람들이 그러한 함정에 빠지곤 한다. 자기가 배우고 알고 있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성공의 참 맛을 보지 못하고 실패만 거듭한 사람에게 고착되는 성향이기도 하다. 새로운 것에 대한 맹목적인 거부다.

 

사람들은 누구나 편견과 선입견 및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진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그러한 것들에 안주하면서 자신만의 철옹성 같은 생각 속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그 견고한 틀을 깨고 밖으로 나와야 만남이 이루어지고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너 때문이야라고 하면서 남 탓만 하고 있는 것이다. 한심스러울 뿐이다.

 

인류의 문명은 그동안 획일적인 환경이나 행동에서 벗어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도전을 통해 발전해왔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것,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앞날을 알지 못함에 대한 불안감으로 거부감이 있기 마련이다. 기존의 것에 안주하는 삶은 현상 유지가 아니라 퇴보일 뿐이고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흐르지 않고 고여 있는 물은 썩듯이 말이다. 우주는 한시도 정체하지 않고 변하고 있는데, 어찌 혼자만 기득권에 안주한다고 해서 영원히 그게 보장될 수 있단 말인가?

 

현대는 다양성이 요구되는 시대다. 경직성과 편협성이 너무 확고하면 다른 의견이나 생각이 귀에 들리지 않는다. 귀를 열 수 없는 것이다. ‘옛날에는’, ‘왕년에는’, ‘내가 젊었을 때는이란 말만 반복하며 새롭게 변화하는 세대에 적응하지 못한다. 항상 하던 소리만 계속하게 된다. 자기가 나이 먹었다는 것만 강조하곤 한다. 그러니 꼰대라는 소리만 듣는다. 나이 먹었다고 우세 떨지 말고 공감하고 동감해야 한다.

옛날에는 오래 살았음을 축하하기 위해 환갑장치를 하곤 했다. 평균 수명이 40대 였던 조선시대에는 인생 60이면 장수한 편이다. 지금은 누군가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하면 괜히 불편해진다. 환갑이 지나도 젊은이처럼 활기차게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노화도 더디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환갑이 되면 인생 전반전이 끝났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후반전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 때는 전반전 때 해보지 못한 것들을 과감하게 도전해보는 시기로 삼아야 한다. 투자나 사업을 새로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전반전 때 해보지 못한 자신을 위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혀 좀 더 풍요로운 삶을 만들어가야 한다. 전반전 때 살았던 방식보다 후반전에는 자신을 변화시켜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한다. 옛날에 하던 대로만 하면 편하기는 하겠지만 인생의 재미는 알 수 없다. 우리는 경험하러 지구별에 왔는데, 하나만 알고 나머지는 알지 못하고 가면 죽을 때 우리는 “~해 볼걸하면서 후회한다.

그리고 전반전 때 획득한 삶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나누어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래야 왕따 당하지 않고 젊은이들과 공감하여 삶을 향유할 수 있다. 더 가지고 싶어 욕심만 부리면 인생이 추해 보인다. 아낌없이 주는 삶이 얼마나 보람되고 가치 있는 삶인지를 알고 죽어야 한다.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없는 삶의 노하우를 젊은 후배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삶이 풍요로워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나를 알아차려야 한다.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나 말들을 알아차려야 현실 파악이 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알 수가 있다. 이론으로는 잘 알고 있지만 막상 부딪히면 잠시 현실에 집착하여 자신을 망각하고 구태에 빠지지 않는지 항상 나를 알아 차려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늘 하던 대로 하기만 하는 늙은이가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라, 이것도 될 수 있고 저것도 될 수 있는 능수능란한 사람이 되어보자. 안 해봐서 못한다고 하지 말고, 안 해봤으니 한번 해보고 싶은 호기심으로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보자. 나 때는 저런 것 없었다고만 말하지 말고 젊은이들에게 물어보며 과감하게 도전해보자. 더 가지려고 욕심만 부리지 말고 아낌없이 주는 멋있는 노신사가 되어보자.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야 할 신비스러움이다.

나는 지금 새로운 경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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