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썸네일형 리스트형 죽음에 대한 생각 ▶죽음에 대한 생각 맞이하고 싶지는 않지만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하는 길이 죽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최고의 권력자도 재력가도 누구도 예외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물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과학의 발달로 어느 정도 생명이 연장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없다면 이 지구는 벌써 멸망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인간들은 죽음이라는 것을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옛날 중국의 진시황이라는 권력자는 있지도 않는 불로초를 찾아 헤매었는지도 모릅니다. 가족 중에서 처음으로 제가 맞이한 죽음은 할머니의 죽음이었습니다. 82세까지 사셨습니다. 그 전날까지 저녁 식사도 잘 하시고 다음날 새벽에 화장실에서 쓰러지신 후 그냥 운명을 하셨다고 합니다. 어.. 더보기 게으름 ▶게으름 오늘 아침엔 게으름을 피웠습니다. 매일 새벽 5시경에 일어나 산책 겸 운동을 하기로 하고 2년 전부터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눈을 뜨니 6시 반이 지나고 있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얼추 운동 마치고 귀가하는 시간입니다.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에 내 마음이 움츠러들었나 봅니다. 나와의 싸움에서 지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목표를 세우고 결심을 합니다.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방식으로 생활하기로 작정을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됩니다. 작심삼일이 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 인간은 그렇게 잘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다시 목표를 세우고 결심을 하곤 합니다. 금연, 금주, 다이어트, 새벽 운동, 만보 걷기, 책 읽기 등 수많은 계획을 세우지만.. 더보기 나의 일, 내 일 ▶나의 일, 내 일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의학의 발달로 인해 유아기 때 사망률이 현저히 감소함에 따라 평균 수명이 늘어난 효과도 있지만 실질적으로도 수명이 늘어나고 있다. 100세 시대라고 말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120세, 150세까지 살 수 있다는 발표도 있다. 일이백년 전만 해도 평균수명이 40대였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일할 수 있는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옛날이면 60세만 되면 장수했다고 하면서 축하잔치를 열기도 했었다. 그때가 되면 집안의 최고 어른이 되어 가만히 앉아서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인생을 정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나이가 되면 아직도 청춘 못지않게 팔팔한 사람들이 많다. 집안에만 있으며 어른 .. 더보기 노사분규 ▶노사분규 제가 생산과장으로 근무하는 시점에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면서 민주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연일 각 기업체에서 노조를 중심으로 파업이 일어났습니다. 그동안 억눌려있던 현장 근로자들이 노조를 구성하고 임금인상을 기치로 걸고 파업을 강행했습니다. 어용으로 지탄을 받는 노조들이 철퇴를 맞았습니다. 저희 회사도 그런 물결을 피해 갈 수 없었습니다. 본관 앞 잔디구장에 모여 구호를 외치며 파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 농성하는 장소에서 선두로 나서서 파업을 주장하는 강경파 조합원들이 어느 본부 소속이냐에 따라 담당 부서장은 물론 과장들은 비상이 걸립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 강경파 사원을 설득하여 조용히 있도록 해야만 했습니다. 파업은 참여하더라도 앞장서서 선동하는 사원이 소속된 부서는 담.. 더보기 성묘 가는 길 ▶성묘 가는 길 저희 조상님의 산소는 만경읍 소토리에 있습니다. 아버님이 태어나서 고등학교 때까지 거주하셨던 동네 인근에 있는 야산입니다. 여러 진척들의 산소와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매년 추석 때와 설날이 오면 가족들이 성묘하러 가곤 합니다. 추석 일주일 전쯤에서 조상님들이 계시는 산소에 벌초를 합니다. 직업적으로 해주는 사람에게 의뢰하지 않고 전주에 있는 형제들끼리 했었습니다. 아버님이 건강하셨을 때는 벌초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도 않았는데, 아버님이 못 가시니 우리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초기를 빌려 형제들 셋이서 번갈아 가며 벌초를 하곤 했었는데, 내가 인천으로 올라오고 난 후부터는 전주에 남아 있는 두 아우들이 수고를 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산소에 가기 위해서는 전주에서.. 더보기 추석 전날 추석 전날 30년 전 오늘은 일찍 근무를 종료하고 회사에서 마련해준 전세버스를 타고 고향에 갔다. 25년 전 오늘은 비몽사몽인 애들을 깨워 새벽 일찍 차를 몰고 고향 길을 재촉했다. 10년 전 오늘은 장거리 가는 차량들에게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어 주었다. 1년 전 오늘은 차량이 밀리는 날을 피하여 하루 전에 미리 고향으로 차를 몰았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한 방역대책에 협조하는 취지로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을 포기했다. 30년 전 오늘은 차는 밀렸지만 편안하게 잠을 자며 갔다. 25년 전 오늘은 오도 가도 못하고 10시간 넘게 차안에 있었다. 10년 전 오늘은 고향으로 내려오는 식구들을 기다렸다. 1년 전 오늘은 새벽 전통시장에서 차례 상에 놓을 물건들을 샀다. 지금 나는 옛날을 추억하며 자판을 두드린다. .. 더보기 consultant와 함께 ▶consultant와 함께 80년대 말의 거센 민주화 운동이 거센 파도처럼 몰아치면서 각 사업체에서 강성 노조의 파업이 지속되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회사에도 매년 임금 인상을 위한 파업이 일어났고 그에 따라 임금의 지출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회사에서는 그런 느슨해진 근무 분위기를 쇄신하고 현장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해 90년대 초부터 전사적인 개선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전사적으로 개선운동을 총괄 진행할 신규 조직을 조직하고 각 본부별로는 공장개선팀을 구성했습니다. 그러면서 전 직원이 운동장에 모여 공장혁신운동을 시작하는 선포식을 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각오를 다지는 선언문을 전사 대표로 낭독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운동의 명칭을 ‘크린 베스트(clean best) 운동’이라 정하고 BES.. 더보기 해외파견 합숙훈련 ▶해외파견 합숙훈련 20여 년 동안 회사에 다니면서 기술 제휴처에 연수차 해외에 나간 적이 두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지게차 기술 제휴처인 일본으로 한 달 정도 갔었고, 두 번째는 유압 크레인을 제작하는 미국의 GROVE사에 한 달 정도 기술연수를 갔었습니다. 그 후에는 출장 형식으로 일주일 정도 일본이나 중국을 다녀온 적이 있었지만 해외에 장기간 파견을 간 적은 없었습니다. 그 당시 그룹 회장이신 김우중 회장님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고 외치시며 일 년의 2/3는 해외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런 회장님의 지침에 의거 이태리에 있는 국영 중공업회사를 인수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현지에서 인수 회담이 진행 중이면서, 국내에서는 인수한 회사를 운영하기 위한 팀장급 인.. 더보기 이전 1 ··· 7 8 9 10 11 12 13 ··· 3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