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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입원하다(2) ▶병원에 입원하다(2) 어제에 이어 계속하겠습니다. 그 사건 이후 이제는 더 이상 병원 신세를 지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입원해야만 하는 일이 2010년 5월 말에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날은 재인 전주고 동창회에서 체육대회가 있는 날입니다. 저는 인천을 떠났어도 가족들이 인천에 있으니 동문 자격으로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운동이라면 좀 소질이 있고 즐기는 편이기에 참석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또한 얼굴 한번 보자고 하면서 제 동기들이 필히 참석하라고 성화였습니다. 거절하지 못하고 시간을 내어 인천에 올라갔습니다. 오래간만에 동창들을 만나니 반갑기도 하고 그래서 오전부터 축구, 족구 등 각종 경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나이 50이 훨씬 넘었지만 아직도 실력은 줄지 않았더라고요.. 더보기
병원에 입원하다(1) ▶병원에 입원하다(1) 저는 나이 50이 될 때까지 입원을 할 정도로 장기간 병원신세 한 번 진적 없는 건강 체질로 태어났습니다.(근데, 아버님은 5형제의 장님인 저를 ’비실이‘라고 말씀하셨지요.) 사소한 감기야 몇 번 있었지만 그 외의 일로 병원에 간 적은 없습니다. 운동하다가 외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받은 적은 있지만, 그 정도야 다들 한두 번 정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최초로 장기간 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는 일이 2006년 6월에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2006년 2월에 인천에 거주하고 있을 때 고등학교 동창들하고 3박4일 예정으로 부부동반 캄보디아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해외여행을 가게 되면 거의 빠지지 않는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현지 가이드의 안내로 쇼핑센터에 가는 일일 것입니다. 해외여행.. 더보기
출판사 워크숍에 참석 ▶ 출판사 워크숍에 참석 난생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내고 나니 호박이 넝쿨 채 굴러왔다고 해야 할까요? 책을 출간하고 1년이 지난 후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한 작가들을 대상으로 워크숍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출판사에서 두 번째로 출간한 후에 많은 작가들이 책을 출간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리더스 클럽에서는 제 책이 나온 것이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한 달에 한 명씩의 작가들이 탄생하여 출판기념회가 열렸습니다. 출판사가 활기차게 돌아가는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인지 홍보의 일환인지는 불분명하지만, 1년 동안 책을 출판한 작가들과 함께 필리핀 세부에서 3박 4일간의 워크숍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여행경비 일체를 출판사에서 부담하는 통 큰 이벤트였습니다. 그냥 빈 몸으로 참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출판사.. 더보기
첫 해외여행 ▶ 첫 해외여행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잠시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통제되고 있지만, 마음만 있으면 북한이 아닌 어느 곳이든 갈 수 있습니다. 그만큼 자유스러워졌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회사 연수를 포함하여 10여 번의 해외여행을 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한 때는 1980년도 5월 일본 기술연수 때였습니다. 제가 소속되어 있던 부서는 중기 본부였고 그중에서도 지게차를 생산하는 부서였습니다. 당시 모든 기업이 그랬듯이 해외 우수업체와 기술제휴를 통하여 국내에서 생산•판매하는 시기였습니다. 우리 회사도 지게차 생산을 위해 일본의 고마츠 제작소와 기술제휴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국내에서의 지게차는 대우와 삼성이 양분하고 있었지만 대우중공업이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이.. 더보기
내가 치른 입시(사) 시험 ▶ 내가 치른 입시(사) 시험 저는 정읍에서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다니다가 아버님의 직장이 전주로 전보되는 관계로 3학년 때부터는 전주에서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사회생활하면서 입학시험을 본 것은 딱 두 번입니다. 첫 번째는 중학교 입학시험이었습니다. 지금은 무시험으로 거의 다 중학교에 진학하지만, 그때에는 중학교 입학을 위해서는 시험을 치러야 했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 교실은 일류 중학교 합격자를 많이 내기 위해서 야간수업도 하였습니다. 합격자 수에 따라 소위 명문 학교로 이름을 날릴 수 있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했고 선생님들 간에도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시골도 아닌 전주 시내였지만 그 당시에는 전등 설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촛불을 켜놓고.. 더보기
첫 번째 내 집 장만 ▶ 첫 번째 내 집 장만 회사에 입사하여 처음에는 대학 때부터 같이 있었던 반포의 외삼촌댁에서 인천으로 출퇴근을 했습니다. 통근 버스를 놓치면 가끔 지각도 했습니다. 출퇴근이 힘들어 입사 6개월 후 회사 내에 있는 기숙사에 입주했습니다. 결혼할 때까지 8개월 정도 생활했습니다. 결혼 후에는 부모님께서 지원해주신 자금을 바탕으로 주안 주공아파트에 전세로 입주했습니다. 소형인 13평짜리였지만 신혼부부가 살기엔 충분했습니다. 그곳에서 둘째가 태어날 때까지 살았습니다. 입사 후 5년 정도 지난 시점에 그룹 차원에서 포일지구에 사원아파트 분양공고가 났습니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넓은 대지에 3층짜리 아파트였습니다. 25평형에 신청하여 3층 맨 좌측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가운데 로열 층이 아니어서 서운했지만, 난생.. 더보기
첫 번째 차 구입 ▶ 첫 번째 차 구입 제가 대우중공업에 재직할 때 일입니다. 그 당시 대우그룹에서 대우 자동차의 전신인 새한 자동차를 인수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대우자동차는 현대 자동차와 기아자동차와 각축을 하고 있는 회사였습니다. 하지만 항상 선두는 현대 차지였고 기아와 2위를 다투고 있었습니다. 대우 김우중 회장은 인수한 회사를 제일의 회사로 키우고 싶었겠지요. 그래서 그룹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자동차 판촉을 실시하였습니다. 직급별로 판매 목표 수량을 정해 놓고 각 사별로 실적을 점검하는 등 회장님의 최대 관심사였습니다. 자연히 각 사 사장들의 첫 번째 관심사가 되었고 각 본부에서도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대단했습니다. 이제 막 마이카 붐이 일기 시작하는 시기였습니다. 각 부서장들은 현업을 제쳐놓고 자동.. 더보기
처음 보듯이, 두 번 다시 못 볼듯이(2) 처음 보듯이, 두 번 다시 못 볼 듯이(2) 지금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있는 것들이 처음 보는 것이라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과 사물들이 두 번 다시 볼 수 없다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제가 수련을 할 때에 안내하는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입니다. '처음 보듯이 두 번 다시 못 볼 듯이' 보면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고 소중한 느낌이 든다는 얘기였습니다. 우리는 너무 익숙한 것들에 대해서는 소홀히 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별도로 신경 쓰지 않아도 항상 내 옆에 있는 것에 특별한 느낌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공기와 시간 같은 것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다 잡은 고기에 미끼 주지 않듯이, 당연.. 더보기